알 수 없어서 더 매혹적인 삶과 시, 그리고 사랑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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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낸 조말선 시인

조말선(57) 시인이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문학동네)를 냈다. 한국 모더니즘 시의 앞쪽에 놓인 시인이 그다. 시집 제목에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뭘까. 그것은 시의 깊이이고, 삶의 깊이이며, 사랑의 깊이다. 세계의 깊이다. 우리는 세계와 삶, 사랑과 시를 정의하고자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거다. 이를테면 구름 같은 거다. ‘구름들은 흩어져서/바람은 흔들려서 결정되지 않으려 한다/흩어지기 위해 뭉쳐본다/멈춘 적이 없는 구름은 순간의 이름이다/구름이라고 부르는 순간/구름은 결정되지 않으려고 부서진다’(‘점점 구름’ 중에서).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출간
바닥에 닿으려는 갈증의 언어
정의하고자 하면 더 알 수 없는
지긋해 아름다운 삶의 역설들

71편 시를 4부로 나눠 실었는데 토르소에 관한 시 두 편이 있다.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인체 조각이 토르소다. ‘생각할 틈을 안 주려고 놀랄 입이 없’고 ‘얼굴을 다시 돌려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내려놓’으며 ‘가슴이 유난히 아파 보였다’(94쪽)는 것이 그의 토르소다. 많이 잘려있는 토르소 조각 같은 것이 그의 시다. 왜 잘라내는가. ‘대상이 가진 고유한 질감’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말할 수 없으나 말해야만 하는 이 감각의 정체’에 이르기 위해서다. 잘라내는데 말하기 위해서란다. 이런 것이 그의 방법적 드러냄, 방법적 감추기, 부정의 시학이다.

그의 시 ‘외국어 교본’이 역설적으로 말하는 아름다운 곳은 다음과 같다. ‘내 슬픔(욕망)이 한 번도 깃들지 않은 곳’ ‘나와 갈등하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혈육이 스며들지 않은 풍경’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외국’이 아니기 때문에 슬픔과 욕망, 혈육과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지긋지긋하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역설이다.

그가 겪었던 지긋지긋하게 아름다운 사연은 뭘까. 10년 만의 출간은 오랜만이다. ‘연못을 돌면 돌수록 우리는 가운데가 텅 빈 관계가 되었다’(38) ‘최근 팔 년간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은 공백기에/흰 붕대를 감아서 마음이 아물어가고 있다’(18). 이를테면 그는 모종의 아픔을 겪었다. 사랑의 아픔 같기도 하다. ‘미끄럼틀’이란 시에서 40회 이상 반복해서 나오는 ‘미끄러진다’는 단어는 표층적, 혹은 심층적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시는 직설하는 법이 없다. 그 아픔은 사랑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 쓰기, 가족 관계, 나아가 삶의 본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동안 시 쓰기에서 두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 그것은 그렇게 지나가더라”고 했다.

‘혀 스토리’라는 시도 눈에 걸린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은 내 혀는 내성적이어서 가만히 넣어두고 네 혀를 사용할 때가 있다 (중략) 혀에도 발톱이 있고 뼈가 있고 맹독이 있다는 것을 혀에 바른 말 위에 얹어서 핥으면 혀와 말이 녹아버리는’. 말이나 키스로 사람을 녹일 수 있는 것이 혀인데 그 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말과 혀를 녹이는 것, 맹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맹독이 삶의 실체다. ‘살이 답답하니까 입이 터진 거라고 살이 꽉 찼으니까 숨을 쉬게 된 거라고 (중략) 살이 아니라 살로 둘러싼 욕망 때문에 살을 키우는 거라고’(96). 삶의 실체는 살의 욕망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밤새워 시를 쓰면서 ‘어디 있는 거니?’라고 되묻고 ‘그런 바닥이 될 때까지 바닥을 구길 수 있을까’라며 시의 깊이, 사랑의 깊이, 삶의 저 깊은 바닥에 닿으려는 뜨거운 갈증을 내보이고 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1·2 시집이 보여준 아버지, 가족에 대한 고민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시를 통해 우리 삶의 무엇을 말하고 싶나, 라는 물음에 그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나부끼는 어떤 소용돌이나 쓸쓸함, 아득함…, 이런 것들 덕분에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거 같다”며 “내 시는 답을 구하는 질문이라기보다 스스로 갱신하는 기회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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