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네이팜 소녀 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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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이 때론 세상을 바꾼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2년 6월 8일 베트남 트랑방 마을. 베트콩이 점거한 마을을 탈환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군은 미군에 지원을 요청했고 무차별 폭격이 벌어진다. 네이팜탄 투하로 마을은 불바다로 변했고 놀란 아이들은 화염을 피해 달렸는데 그 장면이 AP통신 종군기자 카메라 렌즈에 담겼다. 우리에게 ‘네이팜탄 소녀’로 더 잘 알려진 ‘베트남-전쟁의 테러’ 사진의 탄생 순간이다. 사진에 등장한 울부짖는 소녀는 판티 킴푹,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사람은 베트남 출신 AP통신 기자 닉 우트였다.

이 사진은 전 세계 신문 1면에 실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전했다. 반전 여론이 불같이 일었고 출구가 보이지 않던 베트남전은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국제사회는 3000도에 가까운 열로 반경 수십 미터를 불바다로 만드는 비인도적 살상무기 네이팜탄 사용을 금지했다. 닉은 이 사진으로 최고 권위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5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은 물론 모든 전쟁의 참혹상을 알리는 상징이 되고 있다.

당시 아홉 살이던 킴푹은 전쟁의 상흔을 안고 캐나다로 망명한 후 1997년 전쟁 희생자들을 돕는 구호단체인 ‘킴푹 재단’을 만들어 반전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닉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킴푹은 14개월 동안 17번의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가 어린 시절을 잠식했다. “네이팜탄이 나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분노와 증오, 희망 없음이 나를 죽이고 있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벌거벗은 자신을 찍은 기자를 미워했고 상처가 그림자로 남을까 두려웠다.

전쟁이 남긴 심리적 상처와도 맞서 싸워 온 킴푹이 최근 50년에 걸친 육체적 상처를 모두 치유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일 킴푹이 미국 마이애미주의 한 피부과에서 12번째이자 마지막 레이저 치료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킴푹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네이팜 소녀는 이제 잊으세요’라는 기고문을 싣고 “모든 이들이 사랑과 희망, 용서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다면 전쟁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며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진에 감사하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그 사진은 인간이 언제든 형언할 수 없는 악(惡)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평화와 사랑, 희망과 용서가 그 어느 무기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킴푹의 메시지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에도 전해지길.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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