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굽고 텃밭 가꾸고… 이게 바로 소확행 [산복빨래방] EP 6.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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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빨래방] EP 6. 소확행
비 올 때는 전 굽기, 텃밭에는 상추가. 이게 바로 소확행

산복빨래방 마당에는 상추, 고추, 방아 등 다양한 식물이 자리 잡은 텃밭이 있습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어느 하나 마을 어머님, 아버님들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산복빨래방 마당에는 상추, 고추, 방아 등 다양한 식물이 자리 잡은 텃밭이 있습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어느 하나 마을 어머님, 아버님들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비 오는 날에 맞춰 전을 부칩니다. 매일 아침 상추, 깻잎이 얼만큼 자랐는지 물을 주고 흙을 고르며 보듬습니다. 우리가 지켜 본 산복도로 아버님, 어머님의 소소한 일상입니다. 우리가 지친 일상에서 문득 꿈꾸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았습니다. 상추, 고추 같은 채소를 빨래방 앞 화분에 심었습니다. 어머님들과 함께 부추전 재료를 사서 후라이팬 앞에 둘러 앉았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떠올리며

부침개 재료 들고 노인정 방문

부추 다듬기부터 전 뒤집기까지

어머님들 잔소리 ‘시어머니 모드’

그래도 ‘화기애애’ 잔치라며 웃음

산복도로 집집마다 텃밭은 예사

손님들 도움 받아 채소 모종 심고

고양이 배변 습격에 그물망 방어

소확행·기다림·여유 배우기도


■산복 포레스트

지난주 기다리던 비가 왔습니다. 바짝 마른 땅의 목마름을 해소하기엔 부족했지만 오랜만의 단비였습니다. 문득 어머님들이 ‘빨래를 해줘서 고맙다’며 가져다주신 부침개 생각이 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빨래방에 앉아 어머님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던 날 ‘전을 먹고 싶다’고 응석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매번 어머님들께 얻어먹을 수는 없죠. 전 부치는 걸 배우고 싶다고 둘러댔습니다. 어머님들은 흔쾌히 비법을 전수해주기로 했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장면처럼, 소담하게 차려진 부추, 부침개 가루, 오징어, 담치를 반죽해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쓱싹 전을 구워 먹는 모습을. 기대에 부풀어 약속한 마을회관으로 전 재료를 사 들고 갔습니다. 마침 비도 와서, 전 먹기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전이 먹고 싶다'는 응석에도 어머님들은 언제나 저희를 손자, 손녀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십니다. 늘 얻어 먹기만 할 수 없어, 우리가 직접 전을 요리해 대접하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지만 모든 행동이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래도 어머님들은 손자 재롱 보듯 '하하호호' 호탕하게 웃습니다. '전이 먹고 싶다'는 응석에도 어머님들은 언제나 저희를 손자, 손녀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십니다. 늘 얻어 먹기만 할 수 없어, 우리가 직접 전을 요리해 대접하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지만 모든 행동이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래도 어머님들은 손자 재롱 보듯 '하하호호' 호탕하게 웃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달랐습니다. 영화 속 시골 정취에 취해 요리하는 배우 김태리는 타고 난 요리사였습니다. 부추를 다듬는 데 어머님의 잔소리가 더해집니다. 부추 다듬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요. 담치는 이물질을 칼로 일일이 제거해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칼을 잡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어머님에게 칼을 빼앗겼습니다.

전 부치는 것도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전 부치는 모습을 구경하시던 어머님들이 하나, 둘 '노련한 전문가' 모드로 변신합니다. '바싹 구워라, 뒤집어라, 당근을 넣어라' 각자의 노하우가 뒤섞입니다. 그렇게 어머님들의 연륜이 총집합 한 부침개가 한 장 두 장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리에서 바로 만든 바삭한 부추전에는 막걸리도 빠지지 않습니다.

“어머님, 전 부치는 건 누가 알려줬습니까?”, “알려주긴 누가 알려줘, 하다 보니 됐지” 연륜이 묻어나는 우문현답입니다. 유튜브 요리 영상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에게는 ‘하다 보니’ 선생님은 생소했습니다.

산복도로에서 60년 넘게 살아온 어머님들의 노하우를 담뿍 담아 전이 완성됐습니다. 담치, 오징어, 양파, 땡초 등 재료가 가득 들어간 부추전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자체였습니다. 산복도로에서 60년 넘게 살아온 어머님들의 노하우를 담뿍 담아 전이 완성됐습니다. 담치, 오징어, 양파, 땡초 등 재료가 가득 들어간 부추전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자체였습니다.

전이 먹고 싶다는 손자, 손녀들의 투정으로 시작한 전 부치기는 마을 잔치가 됐습니다. 어머님들은 빨래방 사람들 덕분에 우리도 이렇게 잔치도 열고 한다며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10명이 넘는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하는 재료를 사는 데 든 돈 3만 5000원 남짓. 어머님들이 전을 먹고 흥겹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보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고양이 똥과 상추

빨래방을 시작하기 전에는 산복도로 하면 주황빛 야경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산복살이 2개월 차인 우리는 햇살이 잘 드는 대낮의 산복도로를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산 중턱 경사진 계단에 1층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라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고 탁 트여있습니다. 트인 마당에 집마다 소담하게 가꿔진 텃밭은 산복도로의 경치를 더합니다. 마당이 있는 대부분의 집에는 텃밭이 있습니다. 마당은 물론 옥상에도 작은 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방아 등을 기릅니다. 텃밭을 가꾸는 어머님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맛에 키운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맛을 우리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햇살이 잘 드는 산복도로 마을에는 어머님, 아버님 할 것 없이 마당이나 옥상에 각자의 텃밭을 가꾸신답니다. 우리도 빨래방 앞에 상추, 고추, 방아 등을 키우는 작은 행복을 누려보겠습니다. 언제나 햇살이 잘 드는 산복도로 마을에는 어머님, 아버님 할 것 없이 마당이나 옥상에 각자의 텃밭을 가꾸신답니다. 우리도 빨래방 앞에 상추, 고추, 방아 등을 키우는 작은 행복을 누려보겠습니다.

이제는 궁금증이 생기면 유튜브 대신 마을 어머님을 찾습니다. 직접 키운 방아로 방아전을 해주셨던 어머님께 조언을 구하니 텃밭 가꾸는 삽부터 키우던 방아까지 덥석 내어주셨습니다. 에어로빅 회장 어머님은 빈 화단 두 개를 선물했습니다. 70cm, 세로 30cm 정도 화단 두 개를 빨래방 마당에 붙여 놓으니 공간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손자, 손녀들이 채소를 키운다는 이야기에 베테랑 어머님, 아버님들이 빨래방에 모였습니다. 산에서 조금 가져온 흙을 물 빠짐 용으로 밑에 깔고 그 위에 따로 구매한 배양토를 부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화단에 상추, 대파, 고추를 차례대로 착착 심었습니다. 작은 모종이 바람에 살랑이는 장면은 바라보고 있노라면 따뜻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조만간 상추와 깻잎으로 고기 한 쌈 먹을 수 있겠다는 ‘김칫국'까지 마셨습니다. 그만큼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아침, 화단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화단 흙이 발자국과 배변으로 덮여있었기 때문입니다. 화단을 살살 팔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나며 비료와 뭉친 똥이 발견됐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고양이. 고양이는 흙을 파는 습성이 있습니다. 평평한 화단에 고르게 펴진 흙은 고양이에게는 최고의 화장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청객을 막기 위해 화단 위에 그물망을 쳐봤지만, 어설프게 설치한 탓인지 매일 아침마다 화단 위 똥 치우기는 일상이 됐습니다. 정녕 텃밭과 고양이는 공존할 수 없는 걸까요? 불청객을 막기 위해 화단 위에 그물망을 쳐봤지만, 어설프게 설치한 탓인지 매일 아침마다 화단 위 똥 치우기는 일상이 됐습니다. 정녕 텃밭과 고양이는 공존할 수 없는 걸까요?

큰 숨을 내쉬고 생각을 조금 달리 해봤습니다. “고양이 똥이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아버님?”이라고 묻자 아버님은 "아이고, 모르는 소리, 거름이 그냥 똥인 줄 아나?” “고양이 똥은 독해서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더불어 고양이가 밟은 모종은 줄기가 꺾인 탓에 모두 뽑아내야 했습니다.

바야흐로 ‘텃밭 vs 고양이'라고 할 만한 세기의 대결. 가장 먼저 고양이가 텃밭에 오지 못하도록 초록색 그물망을 쳤습니다. 노인정 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플라스틱 막대를 화단 양 끝에 반원으로 꼽은 뒤 그 위에 그물망을 덮었습니다. 촘촘한 그물망과 함께 고양이 화장실도 따로 마련해주기로 했습니다. 산에서 직접 흙을 퍼오고, 인터넷으로 산 고양이 모래를 섞어 옆 화단 옆에 놓았습니다. 다행히 이후 고양이들은 화단 대신 새로 만든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있습니다. 틈틈이 빨래방 식구들은 상추, 깻잎 대신 ‘맛동산(고양이 똥을 지칭하는 말)’를 캐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들은 이거 알려 달라, 저거 알려 달라 하는 우리에게 '젊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도 많다'며 핀잔을 주지만 다 알려주고 직접 해주기까지 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추, 고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물을 주며 눈으로 작물을 닦달하는 모습에 어머님은 “자꾸 보면 안돼. 본다고 크나. 뭐든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지”합니다. 비단 상추, 고추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화단 위 그물망을 튼튼히 설치하고, 고양이에게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주고 나서야 빨래방 앞마당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비록 '고양이 vs 텃밭'의 승부는 고양이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결국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화단 위 그물망을 튼튼히 설치하고, 고양이에게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주고 나서야 빨래방 앞마당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비록 '고양이 vs 텃밭'의 승부는 고양이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결국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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