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의 깊은 어둠서 분출된 믿을 수 없이 아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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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피격… 일본 기자의 시선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11일 고인의 운구차를 타고 자택을 떠나고 있다. 나오코 기자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11일 고인의 운구차를 타고 자택을 떠나고 있다. 나오코 기자

아베 전 총리의 피격으로부터 이틀 지난 10일, 일본에서 진행된 참의원 선거. 애도 분위기 속에서 결과는 예상대로 자민당이 압승했다. 평화헌법 개정을 목표로 둔 보수 세력이 예상보다 많은 ‘동정표’를 얻었다. 하지만 당선인들은 만세 부르기를 자제하고 대신 묵념을 했다.

일본 국민에게 이번 사건은 슬픔을 넘어 충격이다. 사건은 평범한 지방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현장에서 기절한 사람도 나왔다. 아무리 이번 유세 일정이 전날 저녁 결정되었다고 해도 치안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 전 총리 경호로서는 허술한 체계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 되찾자” 강한 지도자의 꿈

불만 표출 수단이 폭력만 남은

동떨어진 현실 속 허망한 죽음

일본 국민에겐 슬픔 넘어 충격


11일 부산 동구 주부산총영사관에 설치된 아베 전 총리 분향소. 로이터연합뉴스 11일 부산 동구 주부산총영사관에 설치된 아베 전 총리 분향소.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에서도 총기 규제는 엄격하다. 하지만 선거 운동 중에 정치인이 피격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나가사키시 시장이 선거 연설 중에 공공사업에 불만을 가진 조직폭력배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1990년에는 같은 나가사키시에서 일왕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시장이 유세 중에 우익단체 구성원에게 총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번 사건의 동기는 불분명하다. 용의자인 41살 남자는 21살 때부터 3년간 해상자위대에 입대했고, 그 뒤 직업을 여러 번 바꿨다. 사건 당시에는 무직이었다. 나라 시내 원룸에 혼자 살고 인터넷으로 재료를 찾고 수제 총과 폭탄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은 후 어머니가 통일교에 입회하면서 생계가 어려워지고 가정이 무너졌다.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와 관계가 깊다고 믿고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유명 인사를 노리고 개인적인 삶과 세상에 대한 원한을 해소하려고 한 범행이었다. 하지만 은퇴 뒤에도 여전히 일본 보수 세력의 핵심으로 군림한 전 총리의 마지막으로서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다. 아베 총리의 사망으로 보수 세력은 일단 이번 선거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했다. 하지만 강력한 구심점을 잃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11일 주부산일본국영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가봤다. 한일교류단체 등이 보낸 국화 속에 아베 전 총리 사진이 놓여 있었다. 현역 총리 시대부터 거의 매일 뉴스에서 접한 익숙한 그 모습. 정치적 사상에는 여러 의견이 있어도 평생에 걸쳐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 비참한 죽음에 눈을 감아 합장했다. 그리고 다시 그 얼굴을 쳐다보고 이런 생각에 휩싸였다. 이 정치가가 구상한 일본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베 전 총리는 2006년에 일본 역사상 최연소인 52세로 총리가 되었지만 1년 여 만에 사임했다. 5년 후에 다시 총리가 되자 이전과는 달리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일본을 되찾자’ ‘아름다운 나라’등 자극적이면서 애매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패전국을 넘어 헌법 개정을 목표에 두고 과감한 경제 정책을 펴 국력과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비원으로 여긴 평화헌법 개정과 군비 강화 구상은 일본을 분열시켰다. 국제 정세에서 헌법 개정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 국가로서 평화를 희구하는 바람이 대립했다.

그는 본래 진지하고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베’는 일본 내셔널리즘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고, 그의 보수 사상이 한·일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베 전 총리는 권력을 확장하면서 한 개인을 넘어 큰 상징이 됐다. 정권이 장기화하면서 부패 혐의도 제기되고 비판도 확대됐다. 이번 사건으로 한 시대가 끝났다. 한·일 양국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면서 여러 과제를 풀고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베 전 총리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프닝 문구는 ‘이 나라를 지킨다’였다. 그가 되찾고 지키려고 한 이상적인 일본은 현실 일본사회와 괴리됐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전 총리에 대한 비판과 칭찬이 극단적으로 회오리쳤다. 용의자는 소외감을 부풀리면서, 불만과 혐오를 품은 군중 중 하나였다. 마치 아베 전 총리가 부정한 반대 세력 중 하나처럼 말이다. 그 불만을 표출시키는 수단이 폭력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이번 사건은 일본 사회의 깊은 어둠에서 올라온, 너무 아픈 현실이다.

히라바루 나오코 서일본신문 기자 naokonbu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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