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67. 빈소와 분향소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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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에 마련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한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에 차려질 빈소를 찾아 아베 전 총리를 조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느 신문 기사 첫머리인데,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신문 기사도 대개 비슷비슷하다. 한데, 이 단 두 문장에 잘못 쓴 말이 너무 많아 어지러울 지경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빈소: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빈소를 지키다./빈소를 차리다./선생님의 빈소가 마련된 병원 영안실에 문상을 갔었다./…/시체는 발상 안 한 대로 침대차에 옮겨서 집으로 모셔다가 빈소를 아랫방으로 정하고 안치하였다.〈염상섭, 삼대〉)

*조문: 남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뜻을 드러내어 상주(喪主)를 위문함. 또는 그 위문. =문상.(조문을 가다./개성까지 조문을 온 그는 유족보다 더 목메어 애통을 했고 누가 탓을 한 것도 아닌데도 죄인처럼 굴었다.〈박완서, 미망〉)

보다시피 빈소는 관을, 즉 시신을 놓아두는 곳이니 주한 일본대사관에 빈소를 차릴 리가 없다. 또, 조문은 상주를 위문하는 것인데, 그 상주(자식이 없는 아베 전 총리의 상주는 부인 아키에 여사)가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에서 문상객을 맞을 이유도 없다. 게다가 상주를 조문하는 게 아니라 ‘아베 전 총리를 조문’한다니….

이런 황당한 기사가 쏟아진 건 ‘대통령실 대변인이 그렇게 말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큰따옴표 뒤에 숨는 것도 언론이 할 일은 아니다. 취재원이 틀린 말을 쓴다면 인용부호를 쓰지 않고 바로잡으면 될 일이었던 것. 혹은, 현장에서 바로 지적해 주거나…. 저 ‘빈소’ 대신 써야 할 말은 ‘분향소’다. 표준사전을 보자.

*분향소: 향을 피우면서 제사나 예불 의식 따위를 행하는 장소.(분향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해서, 빈소는 단 한 곳이지만, 분향소는 여러 곳일 수 있는 것. 빈소와 분향소, 조문을 잘못 쓰기로는 방송도 별다를 게 없다. 아래는 어느 방송에서 진행자가 한 말.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주한 일본대사관 측이 마련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할 예정입니다.…주한 일본대사관은 오늘 아베 전 총리의 빈소를 차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만 보면 ‘분향소’와 ‘빈소’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걸 알 수 있다. ‘조문’도 역시 엉터리.

우리 언론이 내보이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기사를 쓰는 도구인 말조차 제대로, 정확하게 쓰지 못하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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