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우조선 사태가 남긴 차별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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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지역사회부장

지난 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상공에는 굉음을 내는 경찰 헬기가 빙빙 돌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듯 사방에서 노사를 옥죄었다.

평화로운 노사 합의를 촉구하는 각계 각층의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거제로 향하는 ‘희망버스’도 예고됐다. 2009년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전국 뒤흔든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갑작스러운 정부 개입에 일파만파

파국 압박감 속 노사 서둘러 사태 봉합

차별적 노동·산업 구조 수술대 올라야


사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하청노조의 협상 제안으로 협력사 대표, 원청업체 노조인 대우조선지회, 대우조선해양 대표까지 4자 회담이 시작됐다. 2주간의 휴가 전 22일까지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노동자 사이에 이른바 ‘노·노 갈등’이 절정에 달하던 상황에서 전환점을 지난 듯했다.

한데, 지난 18일 별안간 윤석열 대통령이 나타났다. 물결이 잦아드는 호수에 큰 돌덩이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긴급 장관회의가 열린 데 이어, 윤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정부 출범 초기 노동계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옥포조선소는 순식간에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됐다.

노사 협상장에 갑자기 ‘정치’가 끼어들자 혼란이 더해졌다. 결국 지난 22일 난제를 남겨 두고 어정쩡한 ‘노사 협상 타결’이 발표됐다. 노사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협상하며 스스로 결론을 낼 기회를 정부와 정치가 빼앗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대우조선 사태는 산업 현장의 부조리한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갈등의 핵심은 조선업이 가진 다단계 하청 구조, 그리고 저임금에 따른 심각한 인력난이다. 하청 구조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과 상처를 남긴다. 이번 일로 깊어진 감정의 골이 어떤 형태로 다시 분출될지 모를 일이다.

대우조선 현장은 원청과 사내협력사, 사외협력사 3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500곳에 달하는 사외협력사는 대부분 군소업체들인데, 많게는 5차까지 재하청이 이뤄진다. 이번에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사내협력사 100개사 중 22개사 노조가 파업에 나섰다.

원청과 달리, 사내협력사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받아가는 임금 구조를 갖고 있다. 80% 이상이 계약직이다. 과거 조선 호황기에는 오히려 이를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월급제인 원청업체 노동자보다 훨씬 급여가 많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선경기가 얼어 붙은 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다. 시급은 비슷하거나 다소 늘었지만, 노동시간의 틀에 갇혀 임금을 한껏 늘릴 수 없게 됐다. 원청업체와 임금이 40%까지 차이가 난다는 얘기도 들린다.

거제시는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조선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노동시간을 적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2015년께 구조조정까지 한 원청업체가 인력을 늘려 이들 협력업체 노동자를 흡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됐다. 대우조선의 경우 3년 가까이 현대중공업과 인수합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사정이 이러니, 숙련공들이 위험하고 힘든 조선소를 떠나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곳으로 떠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선소 노동자 수천 명이 근무 환경이 좋은 평택 삼성반도체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대우조선 사태를 겪은 대한민국은 이제 노동과 산업 구조를 다시 진단하고, 근본적인 구조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고질적인 하청 구조를 없애지 못한다면, 현실을 감안해 노동집약적인 산업 등에 대한 52시간 근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52시간제 도입으로 고용창출과 노동자 ‘워라밸’을 꾀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원청업체와 협력업체 직원이 일하는데 처우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 거기서 차별이 발생하고, 갈등이 자라난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신분제도가 존재한다. 최상위 계층과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아랫 동네 사람들’끼리 생존 경쟁을 하는 더없이 슬픈 구조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현실을 잘 그려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차별 없는 사회는 비현실적인 이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을 향해 모두가 최선을 다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더 나은 미래에 닿을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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