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몇 층에 카페 둘까?”… 일상 속에서 ‘수학 재미’ 맛보기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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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수학 교육 모색 현장을 가다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등 계기

입시 중심 수업 탈피 시도 활발

부산 고교생 인재 대상 방학 캠프

올해부터 수학 영역 프로그램 시작

일반 학생과 시민 위한 대중 시설

부산수학문화관 연말 개관 앞둬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양산시 동면 BTC아카데미에서 열린 ‘2022 고등학교 미래인재 프론티어 리더 양성 캠프’ 수학영역에 참가한 학생들이 팀별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양산시 동면 BTC아카데미에서 열린 ‘2022 고등학교 미래인재 프론티어 리더 양성 캠프’ 수학영역에 참가한 학생들이 팀별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한 달 전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leds Medal)을 수상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수학’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허 교수는 ‘수포자’가 속출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우리나라 교육계에 울림을 준다. 허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창시절을 회고하며 “처음엔 수학이 재밌었지만, 입시와 연관되면서 수학의 기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의 수학 공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입시가 목적이 아닌 학문으로서 수학을 마주할 순 없을까. 허 교수의 수상을 계기로, 부산지역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수학과의 거리 두기 해제’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살펴봤다.



학생들이 제작한 팀별 과제물. 강선배 기자 ksun@ 학생들이 제작한 팀별 과제물. 강선배 기자 ksun@

■사회 갈등, ‘수학’으로 풀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양산시 동면 부산교통공사 BTC아카데미. 한 강의실에서 연신 감탄과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교생 30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강의실 앞 화면에 꽂혔고, 귀는 쫑긋 발표자들의 목소리에 기울이고 있다. 분위기만 보면 재밌는 이야기 시간 같은데 ‘계산’ ‘가중치’ 등 오가는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이들을 흥미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수학’. 부산시교육청과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이 마련한 ‘미래인재 프론티어 리더 양성 캠프’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저출산 문제를 맞춤형 지원으로 해결하기 위해 6조 원의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지 ‘스퍼너 정리’를 활용해 봤습니다. 높은 집값이 가장 큰 문제인 서울은 ‘주택 지원금’ 1조 7000억 원, 저소득층이 많은 부산은 ‘양육비 지원금’ 2조 6000억 원, 세종시로 인구유출이 많은 대전은 ‘일자리 창출’에 1조 7000억 원을 배분하기로 했습니다.”

발표자의 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진다. “왜 도시마다 가중치가 다른 거죠?” “예산 배분 때 도시의 인구 수를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회를 맡은 교사가 중재를 할 정도로 질의응답이 활발하다.


부산지역 고교 영재학급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캠프는 2017년 시작됐다. 과학 영역만 진행하다 올해 처음 수학이 추가됐다. 캠프 참가자 1200명 중 수학영역 학생들은 ‘스퍼너 정리를 이용한 공평한 분배 알고리즘’을 주제로 이틀 동안 팀별 프로젝트 활동을 한 뒤 결과물을 발표한다. 학계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된 스퍼너 정리는,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공정한 분배로 해결 방안을 찾는 데 활용 가능한 이론이다.

오직 학생들끼리 머리를 맞대 진행하는 프로젝트지만, 기발한 주제들이 쏟아졌다. 직원 3명의 야근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원자력발전소·쓰레기장·장애인학교 등 님비(Not In My Backyard,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않은 일을 반대하는 행동) 시설을 어느 지역에 둘 것인가, 환자 3명이 입원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카페·학원·병원이 상가 1~3층 어디에 입점하고 관리비는 얼마나 낼 것인가 등이다.

여느 수학 수업에선 보기 힘든 열띤 참여.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묻고 답하다 보니 정해진 2시간의 발표가 금세 지나갔다. 양운고 강민승 군은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문제인데, 스퍼너 정리를 이용해 사회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어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교과서, 시험용으로만 만났던 수학이 한층 일상 속으로 들어온 눈치다.

캠프를 주관하는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 정성오 원장은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이 모여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수학을 왜 공부하는지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협업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며 “금방은 표가 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이 같은 경험의 유무는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이달 말에는 초등학생(5학년)을 대상으로도 재밌게 수학에 다가갈 수 있는 ‘사회적 보드게임 만들기 대회’(상상실현 캠프)가 열린다.



■생활 속, 체험으로 만나는 ‘수학’

방학기간 캠프가 상위권(영재)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일반 학생과 시민들이 수학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학 대중화’ 시설도 준비되고 있다.

올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부산수학문화관이 그 주인공. 지하 2층~지상 5층(연면적 9884㎡), 수학 관련 단일 시설로는 전국 최대 규모인 부산수학문화관은 수학을 놀이처럼 접할 수 있는 전시·체험시설이다.

유아·초등학생 위주의 수학놀이와 중·고등학생, 일반인(학부모)을 위한 수학 대중화 공간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동안 동래·북부·서부교육지원청 지역 내 초·중학교를 중심으로 수학체험교실이 운영돼왔지만, 수학문화관이 들어서면 부산 전체 학생들에게로 기회가 확대된다. 일선 학교 수학 수업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사 연수는 물론, 학부모·시민을 위한 강연·전시도 마련된다.

부산수학문화관 빈지현 운영팀장은 “인공지능 등 수학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전국적으로 수학 관련 시설이 생기거나 기존 시설도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며 “부산수학문화관 설립을 계기로 유아·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부산수학문화관은 건물 구조 곳곳에 수학의 원리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피보나치 나선처럼 만든 계단, 역피라미드 구조의 크리에이티브 스텝, 기하학적 요소들이 가미된 입체적인 건물 외벽 등이 특징이다.

부산수학문화관은 또 생활 속에서 수학적 소양을 함양할 수 있는 특별한 교과서도 개발하고 있다. (가칭)〈부산의 활동 수학〉이란 전국 최초의 지역화 수학교과서로, 가령 부산의 대표 축제 중 하나인 국제매직페스티벌의 마술에는 어떤 수학적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올 하반기 중 교과서와 교과 인정심의를 마무리하고 일선 학교(중3, 초등5~6학년)에 보급해, 자유학기제나 창의체험 수업에 활용하게 된다.

한편, 전국적으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혁신교육센터에서 발간한 〈수학의 발견〉이란 대안교과서가 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풀이나 계산 위주의 기존 검정교과서와 달리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 교과서로, 2020년 중학교(1~3학년) 편이 완간됐고 올해 말에는 고등학교 1학년 편도 출간될 예정이다.

최근 열린 〈수학의 발견〉 사용효과 연구보고회에서는, 이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수학 수업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강대 김구연 교수가 학생 103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9.8%가 ‘수학은 공부하기에 흥미로운 학문이다’, 70.9%는 ‘학교 수업이 학원·과외보다 수학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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