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돌격선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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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전작 부담 넘은 ‘한산: 용의 출현’

고뇌 거듭하는 이순신 리더십

학익진 구현한 특수효과 돋보여

내년 개봉할 ‘노량’ 궁금증 더해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의 후속작을 연출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명량’에 이어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한산: 용의 출현’은 기대를 뛰어 넘기에 충분했다. 손에 땀이 날 만큼의 긴장감 있는 해상 전투신의 웅장함과 이순신(박해일)의 비장미, 그리고 ‘명량’과 비슷한 결을 가지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는 전작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김한민 감독의 ‘한산’은 명량해전 5년 전,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필사의 전략을 다루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고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는 등 수세에 몰린다. 이때 이순신은 왜군으로부터 조선을 구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고, 기세등등한 왜군은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정복할 계획으로 부산포로 집결하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패배 소식과 사천 전투에서 거북선에 문제까지 생기면서 조선의 패배는 이미 기울어진 듯 보인다. 패배가 역력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전투의 의미를 의(義)와 불의(不義)로 정의하며 목숨을 건 사투를 준비한다.

모든 것을 잃고 12척의 배만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 했던 ‘명량’의 이순신이 불처럼 정열적이고 두려움 없던 용장으로 그려졌다면, ‘한산’의 이순신은 참고 인내하고 고뇌를 거듭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적의 피해를 높이기 위한 전략에 열중하면서도 자신의 부하를 위해 먼저 앞장서는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적군의 마음마저도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영화 전반부는 용인전투에서 승리로 이끌었던 ‘와키자카’(변요한)를 비롯해 왜군의 입장에서 상황을 전달하고 있으며, 조선군과 왜군이 서로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각국에 스파이들을 심어 놓는 등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것에 주목한다. 특히 거북선의 도면을 얻기 위해 조선의 스님으로 변장한 왜군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침투해 적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기생 ‘보름’과 탐망꾼 ‘준영’은 물 위에서뿐만 아니라, 물 밖에서의 싸움 또한 치열함을 알려준다. 이는 한편의 첩보물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거북선의 도면을 손에 얻게 된 왜군은 한산도 앞바다 견내량으로 나서면서 이순신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왜군은 거북선을 전설 속의 해저 괴물(복카이센)이라 여기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장님배(메쿠라부네)라 부르며 거북선을 하찮게 여기려 했다. 불리는 이름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왜군들에게 거북선은 실로 두려운 존재가 분명했다. 하지만 ‘한산’을 통해 비로소 거북선이 ‘슬픈 배’의 운명을 지녔음을 알게 되었다. 홀로 적진으로 돌진해 적들을 교란시키는 돌격선, 모두 조각나 흩어질지언정 선회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배. 승리를 안겼지만 정작 자신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가진 배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는 완벽함을 넘어, 압도적인 승리를 보여주지만 앞으로 남은 지난한 전투 그리고 물속에 가라앉은 수많은 죽음들로 인해 그 승리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김한민 감독은 학익진을 구현하기 위해 통제된 상황에서 연출을 해야 하기에 바다에 직접 배를 띄우지 않고 VFX(시각적인 특수효과)를 활용했다고 한다. 장대하고 스펙터클한 전투의 생생함이 더 적극적으로 전달된다. 내년 이순신 장군의 삼부작 중 마지막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한다고 한다. 노량해전 속 이순신의 모습은 또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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