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78)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는 조형예술, 박수철 ‘형성 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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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철(1947~)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사이에서 태피스트리(Tapestry)의 현대화를 모색해 온 작가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 공예과와 산업미술대학원 졸업하고, 1976년부터 동아대학교 섬유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작가는 부산섬유예술가회 회장, 부산공예가협회 이사장, 부산디자인센터 초대 원장을 역임했고, 2008년에는 경남 최초로 디자인공로 부문 근정포장을 받았다.

박수철은 부산 지역에서 현대 섬유예술의 토대를 마련한 국내 태피스트리 1세대 작가이다. 순수 조형예술로서의 섬유예술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섬유예술은 전통적 공예에서 벗어나 순수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거듭한 섬유예술은 평면적인 화면에서 입체적인 설치작업으로 발전해오며 현대미술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국내 섬유예술도 전통적인 염직공예에서 탈피,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수용하며 조형성을 탐구해나갔다.

국내 섬유예술의 전성기인 1960~70년대 염색과 더불어 직조 작업이 활발해졌고, 새로운 장르로 태피스트리가 등장했다. 태피스트리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와 같은 영향력 있는 공모전에서 꾸준히 입상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태피스트리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작가군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박수철이다.

초기 염색이나 매듭 형식의 작업을 선보였던 박수철은 1970년대 후반부터 태피스트리를 본격적으로 제작하며 국전에서 여러 차례 입선과 특선을 거듭했다. 1981년 제30회 국전에서 ‘담-81’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당시 단색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무채색 색면으로 한국 전통 창살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에 크고 작은 무채색의 사각형들로 절제된 화면을 구성해오던 박수철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란히 반복되는 곡선, 검정과 빨강의 강렬한 대조를 통해 자연 풍경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2000년대부터는 생명과 탄생에서 오는 근원적 아름다움을 추상적인 형태로 해석한 평면 작업과 태피스트리 특유의 숙련도와 치밀함을 보여주는 인물화를 제작했다.

박수철의 ‘형성 87-2’(1987)는 검정, 회색, 은색의 크고 작은 사각형을 배열하여 독특한 입체감과 리듬감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섬유가 한 올씩 상하로 교차하는 평직 기법을 주로 사용하되, 부분에 따라 이중직의 기법을 적용해 질감의 변화를 주거나 가늘고 길게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어 밋밋할 수 있는 평면에 입체감을 살렸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채, 기하학적 화면 구성, 균일하고 절제된 직조의 표현이 어우러져 고전적인 미감을 보여주면서도, 명도와 채도의 차이에서 조성되는 리듬감이 독특한 인상을 준다.

조민혜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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