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뒹굴었더니 속에 천불이… 나쁜 습관 노리는 위장의 역습, 역류성 식도염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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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 근육 기능 저하로 위산 역류
가슴 통증·속 쓰림 등 대표 증상
서구식 식습관·비만 등 주원인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궤양 생겨

소화기내과 오숙경 과장이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 내시경 검사를 토대로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좋은강안병원 제공 소화기내과 오숙경 과장이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 내시경 검사를 토대로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좋은강안병원 제공

A(45) 씨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소파에 누워 TV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뒹구는 게 하루의 소소한 낙이다. 가끔 회식 등으로 과음을 했을 때는 메슥거리는 느낌을 없애고 속을 비우기 위해 일부러 입에 손가락을 넣어 구토를 하기도 한다. A 씨는 올해 들어 위에서 신물이 넘어오면서 쓴맛을 느끼거나 가슴 속이 별안간 타는 듯 한 증상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그 때마다 소화불량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소화제를 먹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은 A 씨는 위내시경 검사에서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가슴 속에 타는 듯한 통증과 신물

역류성 식도염은 위산이 식도로 역류해서 가슴에 타는 듯한 통증이나 속 쓰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식도에는 입을 통해 위에 들어간 음식물이 다시 넘어오지 않도록 위와 식도 사이를 조여주는 일종의 ‘문’ 역할을 하는 '식도 조임근'이 있다. 이 문은 밥을 먹거나 트림을 할 때만 열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 근육의 힘이 약해지고 이상이 생겨 조임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특별한 원인이 없이도 문이 열려서 위 내용물이 다시 식도로 올라가게 된다. 이 때 위산이 함께 식도 쪽으로 올라가서 식도 점막을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는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다.

역류성 식도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슴 쓰림과 역류다. 가슴 쓰림은 흉골 뒤쪽 가슴이 타는 듯한 증상이 느껴지고, 가슴에서 목으로 증상이 전파된다. 보통 누웠을 때 증상이 발생하는데 제산제를 먹으면 좋아진다. 역류 증상은 위액이나 위 내용물이 목이나 입으로 올라오는 것인데, 시고 쓴 맛이 나며 과식 후나 누운 자세에서 발생한다.

좋은강안병원 소화기내과 오숙경 과장은 “일부 환자들은 역류된 위산이 인후두나 성대, 기관지를 자극하면서 쉰 목소리가 나거나 목에 무언가 걸려 있는 듯한 이물감을 느끼고, 만성 기침에 시달리기도 한다”며 “기침이 3주 이상 지속되는 만성 기침의 경우 그 원인의 10~20%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역류성 식도염의 유병률은 1990년대에는 100명 중 2명이었다가 최근에는 100명 중 1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400만 명 이상이 역류성 식도염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20~30대 환자도 100만 명에 육박한다.


■위산분비 억제제로 증상 완화

역류성 식도염은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발견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환자가 의심 증상을 보이는데도 내시경으로 진단이 안 될 경우 24시간 식도 산도 검사를 시행한다. 이 검사는 코를 통해 산도를 측정하는 관을 식도에 삽입한 뒤 하루 동안 산도를 측정해 위산 역류를 확인하는데 정확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역류성 식도염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만성화되면 염증이 심해져서 식도 궤양이 생길 수 있으며, 식도가 좁아져서 음식을 삼킬 때 불쾌한 느낌이 드는 식도 협착이 올 수 있다. 드물지만 ‘바렛 식도’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 질환은 위와 연결되는 식도 끝부분의 점막이 지속적인 위산의 역류에 의해 오랜 시간 위산에 노출됨으로써 식도 조직이 위 조직으로 변한 상태로, 식도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 바렛 식도는 국내의 경우 1000명 중에 2명꼴로 발생해 드문 편이지만, 일단 진단된 경우는 꾸준히 내시경으로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

역류성 식도염은 적절한 약을 잘 먹으면 치료가 잘 된다. 약물 치료의 경우 위벽 세포에서 위산 분비를 막는 위산분비 억제제를 1~2개월 간 처방한다. 위장운동촉진제를 보조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오 과장은 “약물치료의 경우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강하게 위산 분비를 억제해 식도염을 치료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약을 끊으면 다시 위산 분비가 늘어나 식도염이 재발하게 된다”며 “따라서 초기에 약을 한두 달 사용한 후에도 증상이 계속되면 유지요법을 시행하고, 증상이 좋아지면 약물을 감량하거나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역류성 식도염의 치료는 완치보다는 유지 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정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우선을 둔다는 것이다.


■저녁식사 후 3시간 뒤에 누워야

역류성 식도염은 패스트푸드나 고지방 위주의 서구식 식습관과 비만, 잘못된 생활 습관이 원인으로 꼽힌다. 카페인이나 탄산이 들어있는 음료를 자주 마시거나 음주, 흡연은 식도 조임근의 기능을 떨어뜨려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과식, 고지방식과 함께 사탕, 초콜릿, 신맛을 내는 주스, 커피, 홍차, 박하 등이 역류성 식도염을 악화시켜 피해야할 음식으로 꼽히며 우리나라의 경우 매운 김치, 고추, 생마늘과 같은 자극적인 음식이 포함된다. 증상이 심해졌을 때 먹은 음식을 기록해뒀다가 연관성이 의심되면 해당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만, 특히 복부 비만은 복압을 증가시켜 역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체중 감량이 필요하다. 체질량지수(BMI)를 3.5kg/㎡ 줄이면 역류성 식도염 발병 위험을 4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몸을 꽉 조이는 옷은 피하고, 일상생활에서 몸을 구부리는 동작이나 복압을 올릴 수 있는 윗몸 일으키기나 무거운 역기 들기 같은 과격한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잠을 잘 때는 침대머리를 15도 올리거나 옆으로 누울 때는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눕는 것이 위장의 내용물 역류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 과장은 “대부분의 역류는 식사 후에 발생하기 쉬우므로 식사 후 잠들 기 전까지 3시간 정도의 간격을 두는 것이 좋고, 잠들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며 “평소 복용하는 약물 중에서도 일부 고혈압약이나 진통제, 진정제 가운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약물이 있는 만큼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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