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범이 ‘살인의 추억’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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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모 소설가 ‘어둠의 연기법’

악에 대해 고찰한 네 번째 장편

연쇄살인범 1인칭 주인공 설정

누구나 ‘악’에서 자유롭지 않아

공감과 선의 유전자 끌어내야


장편소설 <어둠의 연기법>을 선보인 소설가 정광모. 정광모 제공 장편소설 <어둠의 연기법>을 선보인 소설가 정광모. 정광모 제공

부산의 정광모 소설가가 네 번째 장편소설 〈어둠의 연기법〉(강)을 냈다. 화성 연쇄살인범인 1인칭 ‘나’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특이한 소설이다. ‘나’는 자신을 다룬 영화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카메라가 초점을 맞춰 사람 마음을 꿰뚫는 마법의 세상에 발을 담그고 싶’(32쪽)어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고,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 여인을 알게 되고, 그 여인과 모종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이다.

그는 근년 부산 소설가 중 가장 왕성한 글쓰기를 한다. 2010년 등단 이후 네 권의 장편소설과 네 권의 소설집을 냈다. 그는 “발상과 첫 문단을 중시하면서, 스토리에 방점을 둔 글쓰기를 해왔다”며 “좀 더 주제의식 깊고, 사건과 사건, 인물과 인물이 연결된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둠의 연기법〉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살인자가 자신의 살인을 다룬 예술작품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이다. 살인자는 ‘영화라는 재현’과 ‘본다’를 통해 인상적인 예술 세계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애초에 한계가 있는, 허세에 가득 차 있다. 그는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작품을 구상한 것은 언제인가?

“약 4년 전쯤이다.” 그러니까 2019년 DNA 확인을 통해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 이춘재가 밝혀져 우리 사회에 하나의 충격파를 던지기 이전이다.

-〈어둠의 연기법〉은 실제 사건의 충격보다 덜한 느낌을 준다. 실제 사건의 ‘악’보다 덜한 ‘악’의 느낌이랄까. 이를테면 문학이 현실을 능가해야 하는데, 너무 생생한 현실/다큐 앞에 문학이, 즉 이 소설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다는 독후감이 없지 않다.

“그건 문학적으로 더 작은 악을 통해, 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더 큰 악이란 무엇인가 라는 본연의 질문에 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대 악이 작품에 들어와 작품 전체를 너무 압도해버리면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치의 가스실 대학살의 현장에 가득한 망자의 신발 무더기에 앞에 서면 역설적으로 ‘악’에 대해 제대로 말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소설에서 ‘악의 기원’에 대한 삽화가 중요하게 들어 있다.

“악은 인간 본연의 무의식과 유전자에 내재돼 있다. 동시에 공감과 선 또한 인간 무의식과 유전자에 내재돼 있다. 우리는 악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악’과 거리가 멀다, 나는 ‘악인’이 아니다 라는 문명인의 의식은 오만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면, 누구 못지않은 악을 저지를 잠재적 소양을 뿌리 깊게 지니고 있다. 그것을 깨닫고 ‘공감과 선’이 발현되도록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장치를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작품 계획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현대 한국을 만든 토대인 한국 전쟁의 학살자와 피학살자에 얽힌 이야기를, 판타지와 현실이 섞인 방식으로 구현해보고 싶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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