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당신은 어떤 꽃을 좋아하십니까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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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디지털미디어부장

한 송이 꽃에도 스며든 정치학
시기 쓰임새 따라 의미는 달라
부산 해녀와 산복도로 주민 등
지역민의 삶 세밀히 톺은 작품
손뼉을 치는 그들도 고맙지만
구체적인 관심과 구독이 절실

폭염이 한창이다. 여름은 다소 성가신 계절이지만, 꽃들엔 더없이 좋은 시절이다.

언뜻 생각나는 대표적인 여름꽃을 떠올린다. 능소화, 백일홍(배롱나무꽃), 비비추, 산수국, 개망초…. 봄꽃은 경이롭고, 여름꽃은 기세등등하며, 가을꽃은 아련하다. 조금만 관심 가지면 주변에서 폭염을 뚫고 피어나는 기운찬 여름꽃을 볼 수 있는데 얼마 전 ‘자인 능소화’에 관한 뉴스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맘때면 전국의 사진 애호가와 여행자가 몰려들던 ‘능소화 핫플’ 경북 경산 ‘자인 능소화’가 누군가에 의해 밑동이 통째 잘렸다는 소식이다. 심은 지 50년 된 자인 능소화는 적산가옥과 절묘하게 어울려 SNS에서 소문이 나더니 전국적 사진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 5월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절단당해 시들고 말았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자인 능소화 풍경은 이제 없다. 누가 아름다운 능소화에 이런 행위를 했을까? 시샘일까? 세상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꽃은 예부터 하나의 상징이었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 부인이 벼랑 위 철쭉꽃을 보고 탐한다. 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옹이 꽃을 꺾어 바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신라 향가 ‘헌화가’다. 삼국시대 대표적인 ‘구애의 노래’인데 이때 꽃은 ‘신이 인간을 구애하는 선물’로 해석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 고대인들은 조상이 죽으면 주검 아래 꽃을 깔고, 무덤 위에도 꽃을 덮었는데 이때 꽃은 추모이자 부활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꽃은 인간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의미 또한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를 감행하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화환 수백 개가 배달됐다. 당시 서초동 검찰청사는 화환 천지였다. 이 ‘꽃 사태’는 한참 뒤 ‘김건희 여사의 고모인 김 모 목사가 대검 앞 화환 전시회를 주도했다고 밝혔다’는 인터넷언론 〈뉴스버스〉의 보도로 일부 연출된 것이 드러나긴 했지만, 검찰청사 화환 배달은 검찰총장에 대해 매우 강력한 정치적 지지를 유발했다.

최근 행정안전부 경찰국 출범을 하루 앞두고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행안부) 앞에는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조화가 여러 개 배달됐다. 이 조화 또한 명백한 의도를 가졌다. 그냥 보기에 아름답지만, 누가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꽃의 상징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그 꽃이 어떤 의미로 전달될지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처지가 중요하다. 태초부터 아름다운 꽃은 결코 잘못이 없다.

〈부산일보〉가 만드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있다. 폭염을 뚫고 핀 여름꽃처럼 ‘핫’한 작품은 최초의 육지 해녀인 부산 해녀를 다룬 ‘부산숨비’와 산복도로에 아예 빨래방을 차리고 만드는 ‘산복빨래방’ 등이다. ‘부산숨비’는 5월 연재가 막 시작되자마자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주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민언련은 ‘지역 특화 콘텐츠로 지역 언론의 장점을 잘 살렸고 지역 소멸 시대에 많은 의미를 가진 보도이다’고 평가했다.

산복도로 마을 폐가를 고쳐 시작한 ‘산복빨래방’도 호평받고 있다. 기자협회가 발행하는 매체인 〈기자협회보〉는 최근 사설 격인 ‘우리의 주장’에서 ‘산복빨래방이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기자협회보〉는 지역밀착형 콘텐츠에 쏟은 투자와 콘텐츠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작품은 나올 수 없었다며 〈부산일보〉가 지역에 천착해 만든 ‘부산굴기’ ‘부산숨비’ 등 지역특화 콘텐츠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는 지역 현안에 밀착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오롯이 기록하는 것이다’고 했다.

‘조화’가 아닌 다음에야 축하한다는 ‘화환’이 무조건 좋지만, 지역 언론의 현실은 절대 녹록지 않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내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예산 중 10억 5000만 원을 삭감하겠다고 한 것이다. 지난해 겨우 여야 합의로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해 지역신문에 대한 안정적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도 무색하다. 2020년부터 지역 신문 지원 예산은 계속 삭감되고 있다. 하물며 국민의힘 김승수 국회의원조차 “지역신문 지원 예산이 계속 줄어든다면 회생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린다”고 경고했다.

아시다시피 좋은 콘텐츠=높은 조회수로 직결되지도 않는다. 선정성과 오락성이 난무하는 영상 콘텐츠 경쟁 시장에서 지역의 목소리를 오롯이 담는 콘텐츠는 그리 인기가 없다. 전직 대통령 집 앞에서 온종일 욕설 방송을 하는 유튜버의 수익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는 칭찬과 관심 둘 다 필요하다. 우리가 애써 만들어 구독자에게 바치는 ‘꽃’을 외면하지 말아달라. 〈부산일보〉 공식 유튜브와 지역 특화 콘텐츠를 지켜주는 비결은 구독! 그리고 좋아요!!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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