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잠든 함안 출신 독립운동가 이태준 추모 ‘80대 시골 의사’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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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서 의원 운영 구자운 원장
6년 전 현지 참배… 올해 4번째
일제강점기 의술 펼치며 항일운동
“고향 후배 의사로 존경심 솟아”

구자운 원장이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 건립된 '대암 이태준 기념관'에 설치된 이태준 선생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구자운 원장이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 건립된 '대암 이태준 기념관'에 설치된 이태준 선생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몽골에서 의술로 대한민국과 고향 함안을 널리 알린 선배님의 인류 사랑과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추모하고 왔습니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구자운 의원’을 운영하는 구자운(87·가정의학과 전문의) 원장. 인구 6천명 남짓한 군북면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이른바 ‘시골 의사’다.

그는 지난달 말 함안승마협회 회원들과 함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독립운동가 대암(大岩) 이태준(1883~1921년)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했다. 87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이역만리 몽골까지 찾아가 참배하는 이유는 이태준 선생이 고향인 함안 출신 선배 의사면서 항일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부터 광복절 전후로 몽골 참배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최근 2년동안 가지 못하다 올해부터 참배를 재개했다. 6년 전 시작한 참배가 올해로 4번째다.

구 원장은 “함안 출신인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업적에 대해 알고부터 고향 후배 의사로서 자연스레 존경심이 솟았다”면서 “‘몽골 슈바이처’로 통했던 선생의 생애는 항일투쟁정신과 국적을 초월하는 숭고한 인간사랑으로 점철돼 있다”고 강조했다.

몽골에 잠든 이태준 선생은 1883년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24세 되던 해 세브란스 의학교(현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해 1911년 제2회로 졸업했다. 당시 선생은 비밀 항일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산하 단체로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 중국에서 일어난 신해혁명에 고무 받아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항일운동과 의원 일을 병행했다. 1914년 나중에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 권유로 몽골 수도 고륜(현 울란바토르)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했다. 그때부터 선생은 몽골에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구자운 원장이 지난달 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 추모했다. 구자운 원장이 지난달 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 추모했다.

선생은 당시 70%가 넘는 몽골인들이 고통 받던 화류병(매독)을 퇴치하면서 붓다의사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던 중 1921년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군인에 의해 피살됐다. 당시 나이 38세에 불과했다.

구 원장은 “선생이 비록 비운의 인생을 살았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의사로서 몽골인의 뇌리에 ‘대한민국’을 뚜렷하게 남겼다”면서 “군북면에 건립된 ‘이태준 기념관’은 매일 가볼 수 있지만, 몽골에서 활동했던 선생의 발자취를 느끼기 위해 매년 함안승마협회 회원들과 함께 가서 추모한다”고 말한다.

함안군도 지난해 11월 이태준 선생 생가와 가까운 옛 군북역사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36억 원을 들여 ‘이태준 기념관’을 준공하는 등 다양한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군은 선생의 몽골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2019년 자매도시인 몽골 울란바토르시 항올구와 교류 협력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지역 특산물인 함안수박재배기술을 전수하는 등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이태준 선생 추모 사업이 시골 의사의 참배 수준을 넘어 국가와 지자체 간 협력 사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고령인 구 원장이 추모를 위한 몽골행에 나설 수 있는 동력은 승마다. 건강관리를 위해 40세부터 승마를 시작했다. 올해로 47년째다. 최근 삼복더위에도 함안승마공원에서 하루 한두 시간씩 승마로 체력을 다지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구자운 원장이 지난달 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 추모했다. 구자운 원장이 지난달 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을 방문, 추모했다.

구 원장은 “승마는 심신운동이라 체력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가능하다”면서 “몽골에서 이태준 선생을 추모하고, 사흘간 몽골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왔다”고 말한다. 곧 90세를 앞둔 그는 여전히 환자 진료와 병원 운영은 물론, 각종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구 원장은 함안승마협회 고문, 전 함안군 의사회장, 한국문협 함안지부 초대회장, 한국예총 함안군지회 최대회장, 함안원로미술가협회 창립, 28회 함안군민상(문예체육부문) 수상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 서훈했다. 또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도 2017년 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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