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다 깜박했나?’ 260년 만에 발견된 통도사 단청 ‘물감 그릇’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세계문화유산 대광명전 기둥 위
안료 말라붙은 조선 채기 발견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내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에서 1750년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1점이 발견됐다.

특히 채기에는 단청 안료가 그대로 말라붙어 있어, 당시 단청에 사용된 안료와 조색 방법, 물감의 사용 방법 등을 직간접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지역 도자기 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통도사는 지난달 대광명전 단청 기록화 조사 사업을 시행하던 중 채기 1점을 발견했다고 8일 밝혔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통도사약지와 통도사지에 현재 대광명전 내 후불탱화와 단청, 본존불의 개금이 1759년에 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 금어(단청·불화를 그리는 승려)가 이 채기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단청용 채기 발견은 1974년 경주 월지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단청용 그릇이 발견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성보박물관은 9일 통도사에서 채기 발견의 의의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채기는 대광명전의 후불벽 고주 기둥 상부의 주두(장식 자재) 위에 얹힌 상태로 발견됐다. 천장 쪽 기둥 위쪽에 채기가 있다 보니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채기는 직경 15cm, 높이 7.5cm, 굽의 직경이 5.5cm로 조선 시대 후기 막사발의 전형적인 형태인 백자분청사발로 확인됐다.

또 그릇의 상태가 완형으로 양호한 데다 시대도 단청 시공 시기인 1759년이라는 연도를 갖고 있어 통도사가 위치한 양산 지역의 조선 후기 유행한 도자기 유형을 유추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선 시대 초기와 중기 양산지역에 ‘중품 자기소’가 운영됐다고 기록되는 등 양산 곳곳에서 도자기 생산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가 놓였던 후불벽 고주 기둥 상부의 주두 모습.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가 놓였던 후불벽 고주 기둥 상부의 주두 모습. 통도사 제공

통도사 성보박물관 측은 “채기 발견 당시 그릇 안쪽에 쌓인 먼지 상태와 담겨있던 안료와 상태 등을 고려할 때 1759년 시행된 단청 공사 당시 금어가 사용하던 중 고주 주두에 놓은 채기를 놓은 채로 공사를 마치고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단청 안료가 채기에 그대로 말라붙어진 상태로 현재까지 유존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편 단청 기록화 사업은 문화재청이 2013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단청 현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분석자료를 확보해 고증연구와 보존 관리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통도사의 경우 응진전과 영산전 등의 주요 전각에 대한 기록화 사업을 시행 중이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