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국가는 로컬의 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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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서울 지배·지방 종속 체계 강화

노동 가능 인구 속속 빨려 들어

새 정부 일극 중심 강화 정책

지역 재생·회생 가능성 낮춰

로컬은 공동체 파괴 저항 의미

정부, 지방 위기 외면해선 안 돼


국가는 로컬의 총합이다. 누구나 다 아는 명제이기에 어쩌면 하나 마나 한 진술에 가깝다. 하지만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로컬은 각 개인이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단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에 살든 자기가 사는 장소가 로컬이라 할 수 있다. 첨단 대도시에 살든 중소도시에 살든 궁벽한 벽지에 살든 삶이 이뤄지는 공간이 로컬이다. 한 나라는 이러한 로컬의 총합이다. 서울 강남이든 강원 원주든 제주 성산이든 모두 로컬이다. 국가는 이와 같은 로컬의 국민과 더불어 운행하는 체계이다.

동남아시아에는 아직 국가 밖에 있는 로컬이 존재한다고 한다. 깊고 높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 없는 삶을 영위하며 자족한다. 고지대뿐만 아니라 늪, 습지, 사막, 맹그로브 해안, 델타, 바다를 비롯한 국가의 외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거나 국가를 피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같이 국가를 거부하는 역사를 지닌 사람들을 제임스 C 스콧은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국가는 그 외부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체계이다. 그렇기에 국가 공간의 지리학에서 벗어난 장소는 저항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뒤집어 국가는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체계임을 확인하게 한다. 인구를 모으고 도시를 건설하여 효율적으로 사람을 다스리기 위하여 하나의 중심을 만들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로컬의 의미는 휘발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를 보는 두 가지 체계의 경합 속에서 살고 있다. 그 하나는 중심과 주변의 지배와 종속의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로컬의 공존 공생의 체계이다. 전자의 힘이 강해지면 로컬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희미해진다. 현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그 누구도 강남을 로컬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심 가운데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지배와 종속의 벡터가 강화되면서 마치 로컬이 지방을 의미하는 듯이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중심의 인력이 커서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인구가 줄거나 노동 가능 인구가 사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지방 소멸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이와 더불어 자기 사는 로컬을 간과하고 중심만 바라보는 편견이 일반화한다. 근래 들어서 재정 효율성을 내세워 정부가 일극 중심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매우 염려스럽다. 지역 재생, 지역 회생의 씨앗이 제대로 성장할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로컬의 공존 공생의 체계를 추구하는 일이 저항의 에너지가 될 공산이 크다.

여기서 내 전공인 문학을 들어 말하자면 이인휘의 장편소설 〈부론강〉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일군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각기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로컬의 장소가 대안공간임을 부각하고 있다. 소설의 서두는 마치 소멸하고 있는 공간 속으로 진입하는 듯 착각하게 하지만 우리는 곧 주류의 흐름을 벗어난 ‘꿈을 꾸는 사람들’의 형성적인 대안의 장소와 만나게 된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농촌운동을 하였거나 철학을 전공하거나 시를 쓰고 소설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목조주택을 짓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이들은 각기 특이한 활동 이력을 견지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하며 주점이나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때론 농부로 변신하여 농민회를 이끌기도 한다. 이들은 단순하게 옛 추억을 나누고자 모인 사람들이 아니며, 함께 농사에 참여하며 과거의 방식을 반성하고 변화에 대응하면서 희망의 공간을 열고자 한다. 결코 단일한 이념의 결사가 아니다. 느슨하지만 우애로 만나 공통감각을 확인한다. 확실히 이들의 생각은 텃세를 부리는 토박이의 로컬주의와 다르다. 그렇다고 외부를 빌려 내부를 바꾸려는 외재주의자들도 아니다. 이들은 부론(富論)이라는 장소에 깊은 이해와 애착을 지닌다. 이들의 장소 감각은 매우 세심하고 구체적이다.

나는 노동 소설을 쓰다 대안공간을 발명한 이인휘의 〈부론강〉을 전혀 새로운 소설이라고 한 바 있다. 이는 이 소설이 모든 가능성을 중심으로 흡수해 가려는 국가 체제에 저항하여 로컬의 의미를 재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변화, 기후 위기, 지방의 소멸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서술한다. 〈부론강〉은 주변부 로컬에서 형성되는 진지를 그려 내었다. 부정하고 소거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진군에 빗금을 치는 실천의 자리가 요긴하다. 지금 우리는 복합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 위기, 고용 위기, 식량 위기 등이 겹쳐 있어서 세상을 복안(複眼)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중심의 맹목이 아니라 국가가 로컬의 총합이라는 상식적인 정의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컬의 곤경을 국가가 결코 외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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