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힙’해진 위스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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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 얼음 채운 잔에 위스키를 넣고 그 위에 토닉워터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를 부어 만드는 일종의 칵테일이다. ‘위스키 앤 소다’가 맞는 말인 것 같은데, 하이볼로 불린 데는 사연이 있다. 옛날 영국에서 귀족들이 골프 게임 중 소다수 탄 위스키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취해서 친 공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조심하라는 뜻에서 “하이볼(High ball)”이라 소리쳤다는 게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하이볼이 요즘 MZ세대에서 ‘대세’라고 한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잭다니엘 등 비교적 싼 위스키를 구입해 즐긴다는 것이다. 곁들이는 탄산음료에 따라 청량감, 달달함 등 여러 맛을 보탤 수가 있어서 취향에 맞다나….

국내 면세점에 따르면 올해 5~7월 위스키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50%나 늘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위스키 매출이 급증하는 추세로, 소주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위스키 구매자 10명 중 3명이 20~30대로 나타났다. 위스키 인기 폭발의 주역이 MZ세대인 것이다. 덕분에 최근 대학가에선 위스키 바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선 위스키 공부모임이 유행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돈이 어디서 나서 그 비싼 위스키를 마시냐고 묻는 건 물정 모르는 소리다. 수집 차원에서 고가 위스키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값싼 위스키로 하이볼 같은 걸 만들어 소모임이나 ‘혼술’ 때 한두 잔씩 즐긴다고 한다. 과거 ‘아재’들이 취하기 위해 마시는 독주였던 위스키가 이제는 맛과 향을 음미하는 ‘힙한’ 술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위스키 인기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위스키 찍턴족’이라는 낯선 단어도 생겼다. 공항 면세점에서 싸게 산 위스키를 시중에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위스키를 재테크로 활용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말이다.

이런 판에 MZ세대가 더 좋아라 할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해외여행 때 적용되는 면세한도가 올 추석 무렵부터 기존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늘고, 술도 기존 1병에서 2병까지 면세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면세점에서 사는 술의 대부분이 위스키인데, 위스키 좋아하는 MZ세대에겐 한결 반가운 소식일 테다. “겉멋”이라거나 “허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코로나와 고물가로 우울한 시절에 이런 일이라도 생겨야 그나마 살 맛이 나지 않겠나 싶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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