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채기, 1759년 4~6월 임한 스님이나 제자가 사용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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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록 통해 사용 시기 추정
조선 시대 채기 모습 최초 확인
하북면서 생산된 백자 분청사발

통도사 송천 성보박물관장이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태권 기자 통도사 송천 성보박물관장이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태권 기자

속보=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통도사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에서 물감 그릇인 채기가 발견(부산일보 9일 자 11면 보도)되면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사찰에서 사용한 채기의 원형이 확인돼 관련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 채기는 1759년 4월에서 6월 사이 단청을 그리던 임한 스님 또는 그 제자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 송천 성보박물관장은 9일 통도사 종무소에서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채기에 남아있던 안료 분석과 대광명전 현판 기록에서 사용자와 시기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광명전 현판에는 1756년 10월 대광명전에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고, 이후 1758년부터 대광명전 중건에 착수한 내용이 적혀 있다. 1759년 4월에서 6월 사이 단청을 그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통도사 송천 성보박물관장이 9일 통도사 종무소에서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태권 기자 통도사 송천 성보박물관장이 9일 통도사 종무소에서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채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태권 기자

임한 스님은 조선 후기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원이다. 스님은 1734년부터 1759년까지 통도사를 거점으로 석남사, 운문사, 기림사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임한 스님과 제자들은 통도사 주요 전각에 봉안되는 탱화와 단청을 전담하는 등 당시 영남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화원 집단이었다. 대표 작품으로 통도사 영산전의 영산회상도(1734년)와 석남사 영산회상도(1736년),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1759년), 쌍계사 후불도(1739년) 등이 있다.

특히 통도사에서 발견된 채기는 하북면 답곡리에서 통도사 스님이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됐다.

대광명전에서 채기를 처음으로 발견한 구본능 문화재청 기술위원은 “이번에 발견된 채기로 조선시대 사찰에서 사용했던 채기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채기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가는 당시 사발의 형태가 아닌, 꺾여서 올라가 위에서 벌어지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통도사 대광명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채기(물감 그릇). 통도사 제공

송천 박물관장도 “조선시대 사찰에서 사용하던 모든 물품 등은 스님이 직접 만들고 생산했다. 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며 “채기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백자 분청사발로 확인됐고, 현재 통도사 인근인 하북면 답곡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송천 박물관장은 “채기는 백자지만, 채기가 발견된 대광명전이 6·25 사변 때 군 병원으로 사용된 데다 겨울에 추워서 불을 때면서 그을음이 발생해 채기가 갈색 등으로 변했다”며 “채기의 밑굽을 보면 백자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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