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책 씹어 먹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인생은 매듭짓기와 연결하기

은퇴 이후 새 삶 기대로 설레

느린 독서 통한 공부는 그 방편


세월은 스스로 흐르는 도도한 강물이 아니다. 세월은 그 속에 수많은 소용돌이와 혼탁한 웅덩이와 가파른 폭포와 다른 곳에서 흘러드는 샛강과 흐름의 길이 되는 골짜기를 품은 채 흐르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세월은 다양한 생명을 키워 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세월은 그 속에서 뭇 생명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매트릭스이기도 하다. 세월의 물로 농사도 짓고 그 물길을 따라 문명을 건설하기도 하면서 만들어 가는 우리의 역사와 인생도 결국은 어떤 이야기일 뿐이다. 외세의 침입과 항쟁과 해방과 독재와 전쟁과 반란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우리의 파란만장한 역사도 어떤 이야기로 정리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인생은 세월과 함께 또는 세월의 흐름에 거스르면서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수많은 관계들의 흐름이기도 하다. 관계들은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들기도 하고 내 안에 없던 새로움을 받아들여 새 삶을 길어 올리는 그물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매듭짓기와 연결하기로 구성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 없이는 새로움을 낳는 연결도 없다.

정년퇴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이 나에게는 큰 매듭의 시간이다. 지난 인생에서도 크고 작은 매듭의 시간이 있었지만,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은 매듭은 철들고 난 다음 지금이 처음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인생은 은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 작정이다. 이 매듭 이전의 인생이 뭔가를 이루려고 애쓴 시간이었다면, 이후의 인생은 그렇게 달려오면서 눈과 귀에 담지 못했던 자잘한 풍경과 소리를 찾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관과 편견을 한꺼번에 모두 내다 버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진 습관과 편견을 만들어 온 대표적 물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책일 것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가장 큰 짐은 언제나 책이었고, 은퇴를 앞둔 지금은 연구실을 둘러싼 책장이 모자라 겹겹이 쌓아야 할 만큼의 책과 자료를 가지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하는 사람 누구나 그랬지만 나 역시 책 욕심이 무척 많은 편이었다. 오랜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구한 귀한 자료도 있고 정말로 많은 돈을 들여 구매한 것도 있다. 유학 시절에는 도서관 책을 빌려 밤새 복사기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나인 이유 중 상당 부분이 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손때 묻은 페이지들과 거기에 끄적거린 메모와 종이의 촉감과 잉크의 냄새는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종이에 잉크로 인쇄한 활자가 아닌 디지털로 화면에 뿌려지는 이미지를 읽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직은 종이에 인쇄된 책이 더 많지만, 종이와 디지털로 동시에 출판되는 책이 많아지고 있고 아예 처음부터 디지털로만 발간되는 책이나 신문·잡지도 적지 않다. 내가 전자책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서울-부산을 오르내리는 주말부부인 데다 출장이 잦은 생활 방식 때문이었다. 독서는 긴 이동 시간을 활용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는데, 들고 다녀야 할 책의 부피와 무게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멀쩡한 종이책을 파손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일단 스캔하고 나면 책 한 권보다도 가벼운 태블릿 속에 담아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렇게 태블릿 하나가 1000권 이상의 책을 담은 작은 이동도서관이 되었다. 키워드만 입력하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과 필요한 부분을 찾아 준다는 것도 엄청난 장점이었다. 종이의 질감과 냄새와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는 없지만 콘텐츠의 활용이란 측면에서는 가히 혁명적 변화다. 지금 서고에 꽂혀있는 책의 절반은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책의 잔해다.

은퇴를 앞두고 나는 전자책으로 바꾸지 못한 것을 포함한 모든 종이책과 헤어지기로 작정했다. 그 책들을 둘 공간도 없지만, 이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닌 선별과 숙성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독서가 많은 책을 빨리 읽어 내 삶을 장식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읽었던 책을 다시 씹어 먹으면서 내 삶의 영양분으로 삼는 아주 느린 공부를 하려 한다. 음식이 그렇듯 책도 천천히 오래 씹을수록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공백이 있는 느린 독서, 그래서 그 속에 삶의 맛과 의미를 새겨 넣어 새로운 시간의 매듭과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공부를 하려 한다. 말년에 이 여정을 함께할 젊은 동반자를 만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공식적 삶의 마지막 매듭이 만들어 낼 새로운 연결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