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14년 만에 집 마당에 둥지 튼 26살 해수부 표지석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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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출범 강남 청사에 자리
그 후 충정로·계동 청사로 옮겨
MB정부 때 등대박물관 ‘유폐’
2015년 국립해양박물관 이전
세종청사 5동 녹지공간서 제막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수부 표지석 제막 행사를 열었다. 해수부 제공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해수부 표지석 제막 행사를 열었다. 해수부 제공

열두살 나이에 쫓기듯이 집을 떠나야 했던 아이가 스물 여섯살의 장성한 청년이 돼 14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가족들은 청년의 뒤늦은 귀환을 못내 미안해하며 스물 여섯살의 단출한 ‘생일’을 자축했다. ‘해양수산부 표지석(표석)’의 이야기다.

해양수산부가 출범(8월 8일) 26주년을 맞아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관리해오던 ‘해양수산부 표지석’(이하 표지석)을 해수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5동 녹지공간으로 옮기고, 지난 8일 오전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했다. 제막식에는 조승환 장관을 비롯해 송상근 차관 등 해수부 직원들이 참석했다.


올해로 26세가 된 표지석의 ‘늦은 귀환’을 계기로 해수부 탄생부터 폐지, 부활 등 해수부의 부침과 운명을 같이 해온 표지석의 애환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1996년 8월 8일 서울 강남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표지석 제막식’ 모습. 국가기록원 출처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1996년 8월 8일 서울 강남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표지석 제막식’ 모습. 국가기록원 출처

해수부에 따르면 표지석은 1996년 8월 8일 해수부 출범 당시 서울 강남 청사에 제작·설치됐다. 당시 제막식 행사에는 해수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할 만큼 표지석의 상징성과 무게감은 컸다. 하지만 해수부는 이른바 ‘힘 없는 신생 부처’이다보니 공동청사 공간을 확보할 엄두 조차 내지 못한 채 단독청사 신세로 잦은 이사를 해야 했다.

이에따라 표지석도 서울 강남 청사를 시작으로, 1999년 서울 충정로 청사, 2005년 서울 계동 청사 앞으로 차례로 옮겨져 2008년 2월 해수부 폐지 때까지 ‘해수부의 상징물이자 자존심’으로서 12년간 해수부와 운명을 같이 했다.

표지석의 기구한 운명은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MB) 정부가 해수부를 폐지하고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부로 통폐합하면서 시작됐다. 표지석은 당시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2008년 3월 아이러니하게도 MB 고향인 경북 포항에 소재한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쫓겨나다 시피 옮겨졌다.


해수부 폐지로 표지석은 2008년 3월 경북 포항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등대박물관 전경. 부산일보DB 해수부 폐지로 표지석은 2008년 3월 경북 포항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등대박물관 전경. 부산일보DB

표지석의 애환은 〈부산일보〉 기록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구한 운명 해수부 표석 MB 고향에’(부산일보 2013년 1월 17일 자), ‘해수부는 세종시에, 애환 많은 표석은 영도에?’(2013년 5월 29일 자) 등의 보도를 통해 표지석이 포항 국립등대박물관에 ‘정식 유물·유적으로 등재한 것은 아니고 단지 임시보관용’으로 사실상 ‘유폐(幽閉)’된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해수부의 표지석 찾기’ 움직임을 생생히 알리기도 했다.

당시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해수부 공무원은 “표지석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해수부가 부산시민과 해양수산인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폐지된만큼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고 판단해 (국립등대박물관 임시)보관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그 장소가 포항 국립등대박물관이었던 것이다.


표지석은 2015년 6월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돼 관리돼 왔다. 해양박물관 제공 표지석은 2015년 6월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돼 관리돼 왔다. 해양박물관 제공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해수부가 부산시민과 해양수산인들의 강력한 염원으로 5년 만에 다시 부활했지만, 표지석은 정부 부처가 새로 입주한 정부세종청사로 이전하지 못했다. 당시 해수부는 5년 만에 해수부가 부활한만큼 그 상징성에 걸맞게 표지석을 세종청사로 옮기기로 하고,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와 협의했으나 ‘불가’ 통보를 받았다. 여러 부처가 입주한 공동청사 입구에 해수부만의 단독 표지석을 세우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표지석을 하중(무게) 때문에 해수부 건물 내로 들여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2012년 7월에 국내 유일의 종합해양박물관인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이 개관했고, 결국 표지석은 2015년 6월에야 해양박물관에 기증돼 이번 제막식 직전까지 관리돼 왔다.

조승환 장관은 제막식에서 “예전에 출근할 때마다 봤던 표지석이 14년 만에 본래의 자리를 찾은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이번 표지석 설치를 통해 직원 모두가 우리 부가 처음 설립됐던 당시의 포부와 의미를 되새기고, ‘신해양강국’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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