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79. 풍년의 염원과 함께 자기 철학의 자유로운 표현, 강선보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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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보(1934~)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부산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1957년부터 1999년까지 교직에 종사했다. 그는 후학을 양성하면서 작가 활동을 병행했고, 1970년 동아대 문리과대학 회화과·1978년 동아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과를 졸업하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공고히 했다. 작가는 ‘제1회 서울현대미술제’(1975), ‘제4회 앙데빵당전’(1976), ‘부산미술의 흐름 60년대전’(1995), ‘영향과 반향’(2000), ‘1960-70년대 부산미술: 끝이 없는 시작’(2020) 등에 참여했다.

강선보는 1965년부터 ‘새로운 모색에 의한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하며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전환을 추구하던 혁(爀)(1963)의 동인으로 활동한다. 1968년에는 ‘추상 이후’를 표명한 ‘이후작가전’에 참여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스테인리스 스틸을 오브제로 이용한 작품 ‘영역침범’을 선보인다. 당시 인공위성이 우주 궤도를 운행하는 시대적 상황을 빗대어 인간이 우주를 침공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같은 해 2m가 넘는 조각 작품 ‘영역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강선보는 1960년대 말부터는 여성의 뒷모습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작품들은 ‘상황’이라는 같은 제목이 붙여졌다. 특정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몸이라기보다는 단색조 화면에 웅크린 듯 뒤돌아있는 나체의 여성이 순간적으로 정지된 듯 표현된 작품은 ‘존재’로서의 인체에 집중하게 하면서 존재가 직면한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태양’(1967)은 1968년 부산에서 개최된 ‘동아국제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이다. 강선보는 김해 벌판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민의 모습처럼 풍년을 상징하는 소재를 찾던 중 배 위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는 잠에서 깨었을 때 작렬하는 태양을 마주하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작가는 ‘풍년이 되든 흉년이 되든 오직 태양에 의해서 좌우된다’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자유롭게 내가 생각하는 미학, 내가 생각하는 철학, 내 인간성을 담자’라는 의지로 작품에 몰입했다.

강선보는 우주의 신비와 에너지의 근원을 담고 있는 ‘태양’을 구현하기 위한 파격적이고 완벽한 방법을 동원한다. 화면 가득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색과 흔적을 쌓아 올린다. 천막 천 위에 카세인과 아교풀을 섞어 표면을 만들고, 유화물감으로 채색한 다음 미장용 흙칼과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긁는 능동적 행위를 더해 견고하게 다진다. 그 위에 휘발유를 뿌려 토치램프로 불을 붙인다. 물감을 칠하고 열을 가하고 문지르고 긁는 행위를 반복한다. 문지르고 긁은 행위의 흔적, 칠하고 섞이고 녹아내리는 물감(색)의 흔적, 그리고 그을린 불의 흔적 등 재료적 성질을 이용하여 거대한 자연 ‘태양’의 열기를 온전히 품어 풍년을 염원한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자료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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