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71. 들어가실게요?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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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가격은 5만 원이시고요. 할부도 가능하세요.”

“그 상품은 품절되셨고요, 2개월 뒤에나 구입 가능하세요.”

물건을 사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걸 새삼 느낀다. 사람보다 돈이나 상품을 높이는 저런 화법에서…. 하지만, 커피를 내주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꼭 돈이나 상품이라서 높인 게 아닌 걸 알 수 있다.

“뜨거우세요. 조심하세요.”

저 ‘-세요’는 ‘-시어요’의 준말인데, ‘-시-’는 말하는 사람보다 상위자에게 붙이는 어미. 한데, 뜨거운 건 커피니까, 저 높여 주는 어미가 필요 없었던 것.(뭐, 이렇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싶다.) 하여튼 이런 시절이다 보니 아래와 같은 높임말도 듣기 어렵지 않다.

“그러면 손님, 이 옷 한번 입어 보실게요.”

“다음 환자분, 진료실에 들어가실게요.”

“우유를 드시면 알레르기가 올라올 수 있으니까, 가려 드실게요.”

물론, 한국어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어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데, 이런 문장은 왜 어색할까.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ㄹ게: (받침 없는 동사 어간이나 ‘ㄹ’ 받침인 동사 어간 뒤에 붙어)(구어체로)해할 자리에 쓰여, 어떤 행동에 대한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내는 종결 어미.(다시 연락할게./오늘은 나 먼저 갈게.)

*-을게: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동사 어간 뒤에 붙어)(구어체로)해할 자리에 쓰여, 어떤 행동에 대한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내는 종결 어미.(그 사람은 내가 맡을게./남은 밥은 내가 먹을게.)

이렇게, 어떤 행동에 대한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보기글에서 보듯이 이 어미들은 1인칭 주어와 호응한다. ‘내가 연락할게’는 돼도, ‘네가 연락할게’나 ‘그가 연락할게’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옷을 입는 손님에게 하는 말인데, 서술어는 말하는 이(화자)인 점원 자신과 호응하는 판이라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되는 것.(‘보실게요, 들어가실게요, 드실게요’에 나오는 ‘요’는 존대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이런 잘못된 화법은 서비스업 쪽에서 잘못된 경어 교육을 하면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직원들이 무릎 꿇고 주문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일 터. 하지만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過恭非禮·과공비례)고 했다. 정도를 벗어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과잉 응대 화법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즉, 돈이나 상품이 아니라 사람만 높이면 되는 것이다. “입어 보세요/들어가세요/가려 드세요”가 뭐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잖은가.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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