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 또는 野… 야산에서 삶을 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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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산 개인전 ‘Hills at Night 야산’
8월 21일까지 조현화랑 해운대
다양한 돌산, 비구름과 조화 추구
사회 불안·불합리 담긴 폭풍의 의미
“좀 더 열린 표현으로 채우고 싶어”

조현화랑 해운대에서 안지산 개인전 'Hills at Night 야산'이 21일까지 열린다. 오금아 기자 조현화랑 해운대에서 안지산 개인전 'Hills at Night 야산'이 21일까지 열린다. 오금아 기자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 올라간 높이가 이 낮은 언덕 아니, 야산 정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안지산의 ‘작업 노트’에는 야산을 오른 기억이 담겼다. 낮다고 쉽게 보고 오른 산인데 땀 범벅이 된다. 올라가니 견딜 수 없는 비바람이 몰아친다. ‘앞은 여전히 캄캄하고 비바람은 계속 나를 세차게 후려친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도망갈 곳도 없다.’ 안지산은 작가로서의 자신은 ‘집요하게 관찰하는 입장’을 가진다고 했다. “전체를 관찰하고 남과 다르게 보려고 하는 자세, 우리 사회를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안지산 '폭풍030'.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30'.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개인전 ‘Hills at Night 야산’이 부산 해운대구 중동 조현화랑 해운대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전시 제목 ‘야산’은 밤(夜)의 산을 뜻하지만, 원래의 야산(野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돌의 형상은 작가가 직접 북한산에 올라 수집한 이미지이다. 한국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친 돌은 인간과 함께 생의 폭풍을 견디는 존재이다. “지난해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폭풍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했어요. 당시 작품에 풀도 나무도 없는 장소가 나와요. 그런 곳에서 (다가올 폭풍을) 견디려면 단단함이 필요하죠.”

전시된 13점의 작품에 등장하는 야산의 색은 각기 다르다. 다양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서로 다른 돌산을 다양한 색으로 표현해 독립된 형태로 그려내고, 그에 맞는 하늘과 비구름의 형태를 완성했죠.”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돌산은 ‘풀과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괴상한 모양의 돌들만 비에 젖어 요상한 빛을 내고 있다’라는 작업 노트 속 문장과 연결된다.

안지산 '폭풍033'.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33'.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31'.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31'. 조현화랑 제공

원래 안 작가는 미니어처를 만들거나 콜라주한 것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철저하게 정해진 틀 안에서 작업을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콜라주의 뼈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해체하고 조합하는 방식을 택했죠. 돌과 구름도 형태의 다양성을 표현하면서 각 요소의 균형과 조화를 끌어내는 데 집중했죠.”

안 작가는 안창홍 작가의 아들이다. 안지산은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한 그는 네덜란드 프랭크 모어 인스티튜트에서 회화 석사과정을 밟았다. “17세기 네덜란드 골든 에이지 때 풍경화가 유행했어요. 네덜란드 구름이 유독 낮아서 유럽의 화가들이 구름을 그리기 위해 네덜란드로 몰려왔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작가적 욕망’을 읽어냈죠.”

안지산 '폭풍028'.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28'.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24'. 조현화랑 제공 안지산 '폭풍024'. 조현화랑 제공

안 작가는 ‘구름 수집’이라는 작업으로 작가적 욕망을 표현했다. 여기에 사회가 가진 불안, 불합리, 불완전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결과가 ‘폭풍’이다. 그의 그림에는 폭풍 전과 후, 폭풍 한가운데로 세 가지 시점이 존재한다. 2020년 네덜란드에서 ‘폭풍이 지나간 후’를 주제로 전시했어요. 폭풍처럼 팬데믹이 빨리 지나가기를, 폭풍이 지나간 뒤 상처만 남는 것이 아니기를 바랐죠.

이번 전시 작품에 등장하는 비는 시각적으로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촉촉이 내리는 비보다는 날카롭게 예고하는 느낌이죠. 그렇지만 폭풍이 밀려올 때 불안만 있는 것은 아니죠. 시원한 바람이 부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폭풍의 의미를) 한쪽으로 몰고 가지 않고 좀 더 열린 표현으로 채우고 싶어요. 폭풍은 항상 다르게 오고, 예상 못 한 지점이 있으니까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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