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한 노동자의 일기, 시간·대륙·사회를 관통하다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마이아 에켈뢰브

청소, 노동, 여성. 세상이 연민하고 대상화하고, 무시하기 쉬운 단어의 조합. 이 세 단어를 지니고 인생을 살아 가는 사람이 글을 쓴다. 이 책은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가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 가는 청소노동자로서의 삶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전하는 일기이다.

그는 왜 글을 썼을까? “나는 계속 일기를 쓴다. 내 삶이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삶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할말이 없어도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얼른 종이와 펜을 잡는다.” 그는 일기를 통해 고단한 삶의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일수록 일기는 단순히 개인적 위로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고, 사회를 비추며, 세계를 성찰한다. 그렇게 가장 개인적인 글은 가장 정치적인 문학이 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67년~1969년으로, 저자는 한반도 위기, 푸에블로호 사건, 베트남전쟁, 6일전쟁, 68혁명 등을 언급한다.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억압된 잠재력에 대한 노동운동, 좌파운동, 여성운동의 관점을 반영한다. 개인적인 기록은 정치적이기도 하여 사회 일원으로서 시간과 대륙을 초월하며 사회적 관심에 동참한다.

이 책은 1970년 스웨덴의 한 출판사가 주관한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자신의 처지가 비참할 때, 진지한 글쓰기는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성찰할 수 있는 도구가 됨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이유진 옮김/교유서가/304쪽/1만 6800원.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