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우유,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이었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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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역사 / 마크 쿨란스키

계급 갈등 유발 등 우유 둘러싼 논란 담아
인간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어온 방식
각종 유제품 탄생의 역사적 배경 추적
GMO 우유처럼 환경 관련 논쟁도 소개

“우유는 그래도 갑니다.”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영국 거리에서 배달부가 우유를 나르고 있다. 우유가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음식이자 식자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진은 당시 사진작가의 조수가 배달부 복장을 하고 연출한 것이다. 와이즈맵 제공 “우유는 그래도 갑니다.”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영국 거리에서 배달부가 우유를 나르고 있다. 우유가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음식이자 식자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진은 당시 사진작가의 조수가 배달부 복장을 하고 연출한 것이다. 와이즈맵 제공

인류학은 방대하다. 인류학이 추구하는 문명과 인간 본성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새로운 사유는 현재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전한다. 지금의 인간과 계속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 문명사에 대한 서적들은 통상 딱딱한 어조이거나 전문적인 용어로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손쉽게 읽기 어렵다.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 중인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듯하다. 그는 1997년 어류를 통해 인류의 문명 발달사와 대서양의 역사를 손쉽게 설명한 〈대구(Cod)〉라는 저작을 선보였다. 이후에도 소금, 연어, 종이 등 특정 생물이나 물품을 통해 인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남다른 관찰 능력과 연구 방식은 그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시켰다.

특히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으로 문화와 시대의 이면에 감춰진 인류문명사를 설명하는 그의 독특한 저작들은 ‘마크 쿨란스키만의 세계사’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부분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그가 이번엔 우유의 역사를 이해하면 세계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유의 역사〉는 쿨란스키가 유럽, 중동, 중국 그리고 젖소가 없던 아메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밝혀낸 우유를 둘러싼 세계사와 논란을 담았다.

많은 주제 중 왜 ‘우유’를 통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다’는 특별한 사실 때문에 인류사의 많은 부분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유의 당분인 락토오스(젖당·유당)는 유전적으로 통제를 받는 락타아제(유당분해효소)라는 효소가 장내에 있을 때만 소화가 가능하다. 인간은 대부분 락타아제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게 없는 아기는 모유를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유전자가 락타아제 생산을 중단시켜 더 이상 우유를 섭취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중동, 북아프리카, 인도아대륙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까지 몸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특정 유전자가 결핍되어 락타아제 생산이 멈추지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창조신화가 우유 한 방울에서 세상이 시작됐다고 믿으며, 구약성서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한다. 우유는 언제나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영양학적 이유로 식품인 동시에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이었다. 때로는 계급 갈등의 기폭제, 때로는 패권 경쟁의 수단이기도 했던 우유는 군용 식량으로 전쟁터를 누비기도 했다. 위생 관념이 부족했던 근대에는 우유를 마시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유를 더 안전하고 맛있게 즐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냉장고의 발명이나 파스퇴르의 저온 살균 공법 등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우유의 역사는 신화와 전쟁, 혁신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식탁에서 흔히 접하는 음식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음식인 우유는 치즈, 버터,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한다.

‘인공 수유를 하는 유럽과 미국에서 아기에게 상한 우유를 먹일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동물로부터 직접 젖을 먹이는 거였다. 16세기 보육원, 특히 프랑스 보육원에서는 아기들에게 염소의 젖을 물리는 게 흔한 일이었다. 교외든 파리든 프랑스병원에서는 20세기까지 직접 젖을 물리기 위해 염소와 당나귀를 길렀다.’

저자는 고대에 낙농 문화가 처음 등장한 지점에서 출발해 우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살펴본다. 인간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어온 방식과 유제품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추적한다. 이어 산업혁명으로 우유를 대량 생산하며 생긴 사회·문화적 변화들을 돌아본다. 티베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우유 문화도 살핀다. 또한 유전자를 조작한 GMO 우유, 공장식 농장과 동물권 등 환경 문제를 다루며 우유에 관한 최신 쟁점도 소개한다. 우유를 주제로 한 그림, 조각, 사진, 우표 등도 수록했다. 우유, 버터, 치즈, 요거트 등을 활용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레시피’도 담아냈다. 〈우유의 역사〉는 우유 한 잔에 담긴 흥미진진한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인류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힌트를 전한다. 마크 쿨란스키 지음/김정희 옮김/와이즈맵/472쪽/1만 9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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