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방치 강제징용 희생자 194구 정부가 길 제시해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40년째 영락공원에 무연고 방치
기억과 추모 통해서 극일 가능해

태평양전쟁 때 강제 동원된 피해자의 유골이 10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제2영락원 지하 무연고자 봉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태평양전쟁 때 강제 동원된 피해자의 유골이 10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제2영락원 지하 무연고자 봉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일제강점기 강제로 징용된 희생자 가운데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유골 194기가 부산영락공원 지하 무연고자실에 40년째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는 1971~1976년 세 차례에 걸쳐 일본 후생성에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1197구를 반환받은 뒤 영락공원에 안치했다. 이후 대부분의 유골은 정부가 몇 차례 유족 찾기 운동을 한 덕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원혼은 가족을 찾지 못하고 무연고실에 방치된 상태로 구천을 떠돌고 있다. 정부도 2005년 70여 구를 끝으로 사실상 유족 찾기에 손을 놓은 상태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제2 영락원 지하 1층 무연고자 봉안당에는 1941년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 강제 징용당한 한국인 희생자 194명의 유골이 다른 무연고자들과 함께 더부살이 중이다. 사물함처럼 생긴 철제 캐비닛에는 ‘태평양’이란 글씨가 선명하고, 희생자의 이름과 본적지까지 적혀 있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고, 관심까지 사라지면서 과거사 이슈가 불거질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추가적인 유가족 정보 파악이나 보상 사업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중앙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고 한다.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강제 징용이 확인된 유해를 유족과 매칭해서 봉환해 오는 업무 외에 무연고 희생자에 대한 이장, 안치는 복지부 망향의 동산 측에 문의할 부분”이라고 답변했다. 복지부 망향의 동산 측은 이에 대해 “행안부를 통해 이장 신청이 들어와야 가능하다”라면서 서로 책임 회피에만 치중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봉안당 시설을 관리하는 부산시설공단에 오히려 대책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어느 경우라도 강제징용 과거사 배상 등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망각한 처사다. 답답한 국내 유족단체들은 “중앙정부가 나서서 방치된 유골과 일본 내 미송환 유골을 국가 전용 추도 시설을 지어 안치하고, 유골 안장 비용 지원 및 배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강제징용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배상’ 진정성 차원에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마침 오는 15일 광복 77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출범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한 달 남짓 동안에 세 번이나 일본 외교장관을 만나 피해자 배상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과거사를 둘러싼 ‘대일 외교’에 공을 들이기에 앞서, 국내에 수십 년째 방치된 희생자부터 살피는 것이 기본이어야 한다. 가족을 찾지 못해 방치된 강제징용 피해자의 원혼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다. 아픈 역사를 쉽게 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극일은 보여 주기식 행사나 시위가 아니라 기억과 추모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