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헌신과 숭고한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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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낭독음악극 ‘통인동 128번지’ 포스터. 부산일보DB 낭독음악극 ‘통인동 128번지’ 포스터. 부산일보DB

신흥무관학교는 대일항쟁의 숨결을 불어넣은 독립운동기지다. 1911년 설립하여 1920년 폐교할 때까지 졸업생 3500여 명을 배출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가혹한 현실에서도 군사훈련에 집중했다. 졸업 후에는 무장독립단체에서 교관과 전사, 대원으로 활동했다.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독립군, 대한통의부, 정의부, 신민부, 국민부, 의열단, 광복군 등이 이끈 항쟁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항쟁 방식은 다르더라도 민족해방의 한길을 향한 열망과 발걸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혁명선언’은 민중직접혁명론을 민족해방운동으로 정립한 의열단 창립선언문이다. 1922년 가을 베이징을 찾은 김원봉의 부탁으로 단재 신채호가 작성했다. 1923년 1월 탈고한 5장 6400여 자에 이르는 선언문의 글자 한 자 한 자가 왜적의 심장을 겨눈 폭탄과 어찌 다르다 할 수 있으랴. 단재는 이 선언문에서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정치적 투쟁은 “한바탕 잠꼬대”에 불과하며, “강도”에 빼앗긴 정권과 생명을 되찾기 위해 “암살, 파괴, 폭동”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단재가 표방한 민족해방의 길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일가의 고결한 희생의 산물이다. 삼한갑족으로 명망을 누리고 있었는데도 여섯 형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버렸다. 이들이 마련한 독립자금 40만 원은 오늘날 600억 원에 해당한다. 비밀리에 급히 처분하느라 제값을 받지 못했으니 2조 원에 달하는 가치라 한다. 이러한 가문의 헌신에도 이회영 일문의 삶과 죽음은 이를 데 없이 참혹했다. 이석영은 빈민가를 전전하다 아사했고, 이회영은 고문 끝에 옥사했으며, 다른 형제들은 최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 처참하고 외로웠다.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은 자서전 〈서간도시종기(西間島始終記)〉에서 “사람이 닿지 못하는 만고풍상”이라 기록했다.

명망과 지위, 재산과 목숨마저 먼지처럼 내던지며 일제에 맞섰던 선열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8월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들이 꿈꾼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과 얼마나 같고 다른가. ‘통인동 128번지’는 〈서간도시종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낭독음악극이다. 이회영 부부가 들려주는 국권침탈 이후 가문의 내력이란 독립운동사 그 자체다. 이회영이 꿈꾼 세상은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의 길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진정 해방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을까. 파국으로 치닫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일상속에서 자유를 찾아나서는 ‘나의 해방일지’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의 욕망과 상상력이 압도하는 현실 속에 매몰되어 삶의 자유를 스스로 속박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신자유주의의 가파른 물결이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데도 숭고한 삶의 가치를 외면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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