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북플레이션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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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장

새 책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디자인 변화 등 출판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책 뒤에 명기된 정가를 보지 않아도 책값을 가늠할 수 있다. 양장본에 300여 쪽인 소설이라면 통상 1만 5000원대, 평범한 디자인에 400쪽 가까운 분량의 인문학 서적이라면 1만 6000원대라는 식이었다. 표지 꾸밈, 종이 재질, 띠지와 책날개의 존재 여부 등도 책값 추정의 중요한 측도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책값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올 들어 책값을 맞추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1만 4000원 정도이겠거니 생각하고 정가를 확인하면 1만 5500원이거나 1만 6000원인 식의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책값은 상반기 후반과 하반기 들면서 더 올라간 느낌이다. 8월 현재, 상당수 책들이 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책마다 상이한 디자인과 종이 재질, 저자 수준 등으로 인해 책값 인상 통계를 정확히 추출하기는 어렵지만 상반기 동안 10% 이상 인상됐다는 생각이다. 요즘엔 15~25%까지 올라갔다는 느낌을 주는 책도 자주 만난다.

가장 큰 원인은 인쇄용지 가격 상승이다. 펄프의 국제 거래 가격이 급등했다. 국내 제지업체들도 인쇄용지 가격을 올렸다. 출판사들은 책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종잇값 폭등 등으로 인한 ‘북플레이션’(Book+인플레이션)이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다.

북플레이션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펄프 가격이 계속 요동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의 물가 상승률도 너무 가파르다. 모든 부문이 폭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사들의 정가 대비 원가율을 올리는 외부 요인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북플레이션은 독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출판계는 그동안 책값 인상을 자제하며 독서 인구 감소를 막아왔다. 이번 책값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그들의 주장에도 적극 공감한다. 그렇지만 북플레이션은 날선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책값 폭등은 독서를 즐기는 서민에겐 너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독서 위축, 출판계 침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책값 인상에 앞서 양장본을 페이퍼백으로 대체하거나 중질지를 사용하는 문고본 부활, 띠지와 책날개를 없애 원가를 줄이는 방안, 화려한 표지 디자인을 위한 코팅 등 후가공 작업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유통하는 온라인 서점 등의 도서 공급률을 한시 조정하는 등의 상생 대책도 절실하다. 북플레이션을 최소화하려는 범출판계의 지혜를 기대한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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