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반값치킨과 치킨런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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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 볼 테크닉(Low ball technic)은 ‘공 던지기를 할 때 먼저 낮고 잡기 쉬운 공을 받기 시작하면 점차 높아져 어려운 공도 받게 된다’는 데서 유래된 마케팅심리학 용어다.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반값’ ‘90% 할인’ ‘파격 대할인’ 등 저렴한 ‘미끼 상품’을 먼저 보여줘 구매 의사를 갖게 한 뒤 비싼 상품으로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그래서 유통 전문가들은 “아예 매장을 찾지 않는 것이 알뜰 쇼핑”이라고 훈수하기도 한다.

경기가 어렵고, 매출이 떨어질수록 이런 마케팅 전략은 더 자주 벌어진다. 국내의 경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유통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사람들의 씀씀이가 확 줄어들자 백화점이 배추나 치약 등 식품과 생활용품을 원가나 일반 판매 가격보다 훨씬 싸게 내놓았다. 반값 상품으로 인해 떠난 고객이 다시 매장을 찾게 되고, 다른 물건 가격도 싸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전체 매출이 늘어난다.

7월 국내 소비자물가가 23년 만에 최고 상승률(6.3%)을 보이면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오르지 않은 걸 찾기 힘들 정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물가를 더욱 끌어올렸고, 예기치 못한 집중 호우로 농산물 작황마저 나빠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물가 급등에 대출이자 부담까지 급증하면서 가계 실질 소득이 줄고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식용유와 부침가루 가격이 30% 이상 오르면서 ‘국민 간식’이던 치킨 가격도 배달비까지 포함하면 3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젠 ‘귀족 간식’으로 격상될 정도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져 치킨 한 번 시키려 해도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런 와중에 대형 유통업체에서 마리당 6000원대 ‘반값치킨’을 내놓으면서 문 열기 전에 줄을 서는 ‘치킨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형마트가 경기 부진에 따른 매출 부진을 타개하고, 온라인쇼핑몰로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장을 흔들고 있다.

관건은 대형유통업체와 대기업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사이에 끼인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지다. 유통업체가 한국인이 눈물겹게 사랑하는 치킨을 지속적으로 반값에 제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번 반값치킨 논란은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대한 서민들의 비명이다. 정부가 서민 물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치킨런을 서둘러야 할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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