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평가 ‘자율’서 돌연 ‘필수’로… 학교는 혼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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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부터 시행 시기·대상 논란
7월 중순 올해 평가 시범 실시 발표
10일 시교육청 전면실시 안내 공문
전교조 16일 철회 촉구 기자회견

하윤수 부산교육감. 정대현 기자 jhyun@ 하윤수 부산교육감. 정대현 기자 jhyun@

올해는 희망 학교만 참여하고 내년부터 전면 확대될 예정이던 부산 지역 학업성취도 평가가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의 지시로 돌연 올해부터 전면 시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교육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지역 교원단체는 즉각 반발 기자회견을 예고해 한동안 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14일 부산시교육청과 교원단체 등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지난 10일 일선 학교에 ‘2022학년도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시행 내용 변경 안내’ 공문을 내려보냈다. 해당 공문은 올 하반기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시행 예정된 학업성취도 평가를 ‘희망 신청’에서 ‘필수 신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시교육청은 올해 학업성취도 평가를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서만 실시하기로 하고 지난달 22일 희망 신청을 받는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보름여 만에, 돌연 평가 대상을 ‘희망(일부 시행)’에서 ‘필수(전면 시행)’로 바꾼 것이다.

시교육청의 입장 변화는 ‘1호 공약’임을 강조한 하 교육감의 특별지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공문에 적힌 변경 사유엔 ‘교육감 공약 이행’이라고 표기돼 있다.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부산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학업성취도 평가 대상 학년의 전수 평가가 치러지게 됐다.

교육 현장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부산지역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는 “희망 학교만 신청한다고 해서 우리 학교는 올해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며 “갑자기 필수 참여라고 하니, 평가를 원하지 않는 학부모에겐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학업성취도 평가 전면 시행을 둘러싼 혼란은 지난 지방선거 기간부터 계속됐다. 하 교육감은 후보 시절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가, 당선 이후엔 교육부 계획과 연계해 평가 대상 학년을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더해 지난달 15일 교육감직 인수위는 부산시교육청 주요 추진 과제와 공약을 발표하는 대시민 보고회에서 서버 문제 등 준비 상황을 고려해 올해 학업성취도 평가는 대상 학년 중 일부 학교만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초 발간된 인수위 백서에도 초등학교 80곳과 중·고등학교 30곳에서 시범 실시한 뒤 내년부터 초등학교 304곳과 중·고등학교 276곳 전체로 확대한다는 이행목표가 담겼다.

이처럼 인수위가 완성한 민선 5대 교육정책·공약 중 핵심인 학업성취도 평가가 하 교육감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시범 실시에서 전면 실시로 바뀌면서, 시교육청이 교육 현장의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 전교조 부산지부는 16일 오전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업성취도 평가 필수신청 철회’를 촉구할 예정이다. 부산지부 측은 “학교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변경했다”며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시행은 교육부장관의 권한으로, 교육감은 변경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이날 기자회견 뒤 교육감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시교육청은 부랴부랴 관련 준비에 착수했다.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 관련 연수를 실시하고, 컴퓨터 기반 평가를 위한 이어폰 구입 등 장비 확충에도 나섰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9월 실시되는 3% 표집시행 학교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뒤 대비책을 마련해, 이후 자율평가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의 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전면 도입되는 컴퓨터 기반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올 하반기 초6·중3·고2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초5~6·중3·고1~2, 내후년은 초3~고2까지 대상이 확대된다. 기존 전국 3% 표집평가와는 별개로, 희망하는 학교는 9월부터 내년 3월 사이 신청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부산은 하 교육감의 재량권을 앞세워 자율이 아니라 전체 학교를 필수 참여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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