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용지물' 화재경보기, '속수무책' 대형 인명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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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오작동·안전 불감증 사고 키워
소방 법령 개정과 시스템 개선 시급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한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한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

부산을 포함한 전국 아파트 등에서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정지하거나 아예 꺼 놓는 경우가 빈번해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원인으로 드러났다. 특히, 여름철에는 습기 등의 이유로 화재경보기 오작동도 잦아 핵심 소방 시설인 화재경보기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인한 소방 출동 건수는 총 4만 5424건에 달한다. 오작동 출동 건수는 2011년 1977건이었는데, 해마다 늘어 10년 새 22.9배가 됐다. 화재경보기의 잦은 오작동은 화재 관리 담당자의 경보기 차단 행위를 부추기고, 사고가 나더라도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이런 안전 불감증과 어이없는 대처는 어김없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6월 일가족 3명이 숨진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아파트 화재 때도 관리사무소 측이 화재 직전 다른 동에서 발생한 화재경보기 오작동을 처리하면서 단지 전체 경보기를 정지시켜 피해를 키웠다. 지난해 충남 천안시, 경기도 이천시·남양주시 등 전국에서 잇따랐던 대형 화재 사고 대부분이 안전에 가장 민감해야 할 건물 관리자들이 화재 경보를 듣고도 “시끄럽다”라는 이유로 경보기를 인위적으로 차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초기에 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피 골든 타임’을 놓쳐 대형 피해로 이어진 셈이다.

최근에는 불볕더위로 에어컨 가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에어컨 실외기에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열대야로 인한 밤 시간에 화재경보기 오작동과 중단 조치가 빈번해지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성마저 높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이후 지체 없는 재작동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령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현행 소방시설법은 ‘소방 시설은 점검·정비를 위해 정지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을 뿐, ‘완료 후 즉시 재가동해야 한다’라고 명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아파트 단지의 화재경보기 제어를 동별로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잇따른 화재 사고와 인명피해는 대한민국의 안전 관리 체계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음을 증명한다. 사고가 난 후에야 담당자를 처벌하고, 땜질식 대책만 세워서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실수만 반복할 뿐이다. 언제까지 후진적 안전 관리로 인한 인재를 두고만 봐야 하는가. 특히,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 가는 현실에서 화재 안전 시스템 강화는 어느 때보다 필수적이다. 화재 예방은 시민의 삶과 안전에 너무나 중요하다. 관련 법령 개정과 경보기 제어 시스템 개선, 담당자에 대한 근무 매뉴얼 강화 등 원점에서부터 하나하나 챙기고 보완해야 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구호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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