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고혈압 잘 걸린다고? 폐경 여성·임산부 더 조심해야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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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 고혈압 환자, 여성 〉남성
폐경 후 호르몬 줄면서 유병률 쑥
혈관·심장 질환 발생 위험 높아져
고혈압 질환 임산부 갈수록 늘어
임신중독증·감염성 질환 등 우려

부산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최정현 교수가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부부에게 임신성 고혈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제공 부산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최정현 교수가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부부에게 임신성 고혈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제공

고혈압이라고 하면 음주, 흡연, 과식하는 중장년 남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여성 고혈압 유병률 역시 남성 못지않게 높으며, 특히 갱년기 이후에는 급격히 증가한다. 대한고혈압학회의 ‘2021년 고혈압 팩트시트’에 따르면 전체 고혈압 유병자는 남성이 630만 명, 여성이 577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65세 이상에서는 남성 196만 명, 여성 299만 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많다. 혈압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고혈압 조절률 역시 50대까지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좋지만, 60대에서는 남성 67.1%, 여성 53.2%, 70세 이상에서는 각각 62.9%와 51.1%로, 고령 여성의 고혈압 관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여성 고혈압 환자, 남성의1.5배


여성들에게 고혈압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폐경 이후다.여성호르몬 분비가 줄면 내피세포기능에 장애가 생기고 체질량지수가 증가하며, 당뇨, 교감신경 활성, 레닌 분비 증가, 안지오텐신II 증가 등으로 생물학적으로 가용한 산화질소가 감소한다. 이로 인해 혈관의 내피세포 수축에 관여하는 물질이 다량 활성화되어 염분 섭취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고, 혈관 내 압력이 증가하면서 고혈압 발생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여성은 혈관의 굵기가 남성에 비해 가늘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동맥의 길이도 짧아서 혈관이 노화되면서 나타나는 동맥의 탄성도 저하, 즉 동맥 경직도가 상승하게 된다. 혈관 경직도가 증가하게 되면 혈압이 높아지게 되고 이로 인해 심장의 펌프 기능은 정상이지만 이완 기능이 저하돼 조금만 운동을 해도 숨이 차는 증상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혈압성 심비대가 있다면 이 같은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부산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최정현 교수는 “나이가 들면 전신 동맥 혈관의 탄력이 감소하고 경직도가 높아지면서 고혈압이 발생하기 쉬운데, 여성들은 폐경과 함께 여성호르몬 분비 감소라는 요인까지 겹치면서 남성보다 고혈압 유병율이 높아진다”며 “음주, 흡연 등 외부적 요인을 관리하지 않는 경우 위험도는 한층 커진다”고 말했다.

고령 여성들의 경우 고혈압에 의한 좌심실 비대, 심부전, 동맥 경직도 증가, 당뇨, 심방세동, 인지 장애 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적정 수준의 혈압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출산 절벽에도 임신 중 고혈압 질환 증가

한국은 매년 역대 최저 출산율을 갈아치우고 있음에도, 고혈압성 질환을 가진 산모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15~49세 출산 여성 중에서 9%가 고혈압을 갖고 있었는데, 이중 임신 이전부터 있던 만성 고혈압이 5.4%, 임신으로 인한 고혈압이 3.1%에 달했다.

임신 20주 이전부터 혈압이 높은 만성 고혈압 산모의 경우 조기 출산 및 저체중아 출산 위험도가 2.7배 높고, 신생아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할 위험도와 태아 사망 위험도도 각각 3.2배, 4.2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 20주 이후 혈압이 올라가는 임신성 고혈압 산모는 조기 출산 및 태아 성장 지연의 위험도가 높다. 특히 임신 중 전자간증(임신중독증)은 임신 고혈압의 50%에서 발생했다. 전자간증은 임신 중 출혈이나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며 모성 사망 원인의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고령 산모의 경우 임신 전 이미 당뇨, 고혈압, 비만, 콩팥병 등 만성 질환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며 “임신 시 고혈압과 동반해 단백뇨, 두통 등을 유발하는 임신 중독증의 경우 78%가 30~40대 임산부에게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수축기 혈압이 160mmHg 이상이거나 확장기 110mmHg 이상인 중증 고혈압 산모의 경우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약물 치료를 통해 적정 혈압을 유지하되, 확장기 혈압이 80mmHg 미만으로는 낮춰지지 않도록 권고되고 있다.

임신 고혈압은 대부분 분만 후 12개월 이내 증상이 완화되지만, 이후에도 고혈압이 지속되면 만성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치료·관리도 더 어려운 여성 고혈압

고혈압의 치료 방법은 남녀에 따라 다르지 않다. 고혈압을 진단받았다면 전문의를 통해 꾸준히 혈압 관리를 받고 나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한다. 우선 금연, 금주, 체중조절, 운동, 과일 및 채소 섭취, 염분 섭취 제한 등 생활 습관 개선이 필요하다.

최 교수는 “폐경 이후 여성 고혈압 환자는 염분에 민감한 경우가 많은 만큼 짜지 않게 먹도록 해야 하고, 몸무게가 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 혈압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단, 여성은 고혈압 약물로 인한 부작용이 남성보다 자주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1.5~1.7배 많은 고혈압약 부작용을 겪는데, 항고혈압제로 인한 전해질 균형 이상, 부정맥, 통풍 등의 발생률이 남성보다 높고 칼슘길항제에 의한 말초부종도 더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약을 먹어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용량을 조절하거나 다른 계열의 고혈압 약제를 처방받아야 한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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