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엔 “주민 삶 획기적 개선” 일본엔 “조속한 관계 복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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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자유’ 키워드 대북·대일 메시지
경제 지원 세부 내용 처음 제시
유엔 제재 단계적 완화도 포함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천명
위안부 배상 관련 언급은 빠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를 키워드로 삼아 대일·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에 대해서는 실질적 비핵화를 전제로 ‘담대한 구상’의 세부 로드맵을 제시했고, 일본은 세계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함께 맞설 ‘이웃’으로 평가하며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단계적 경제지원 강조

이날 경축사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의 세부 내용을 처음 제시한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고조되는 데도 과감하고 전향적인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하면 북한 경제와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예고했다. 북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반대급부로 단계별로 경제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 개발의 명분으로 앞세워 온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안전 보장’ 방안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담대한 구상’에 담길 북한 비핵화 상응조처는 ‘경제’와 ‘안보’의 두 축으로 구성돼야 하는데 안보가 빠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고자 애썼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경제적 지원책이 강조됐지만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정치 분야의 평화 정착 조치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정부 대북·통일정책의 목표는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는 것”이라며 “정치·군사 부문의 협력 로드맵도 준비해 뒀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면서 “포괄적인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면 동결·신고·사찰·폐기로 나아가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남북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설립 가동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 대북제재의 단계적 완화도 가능하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18년 싱가포르 회담, 2019년 하노이회담에서 북한 지도부가 가장 관심 갖고 질문했던 것은 유엔 제재의 완화 방안”이었다며 “필요에 따라서는 지금 이행되는 유엔제재 결의안에 대한 부분적인 면제도 국제사회와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일 안보협력 주목

이번 경축사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한·일관계의 조속한 복원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하며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77년이 지난 현재의 일본이 이제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이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과거사에 얽매여 역사적 정의 실현만 내세우기보다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한·일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특히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을 공식 천명하면서 이를 토대로 한·일관계의 빠른 회복과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담고 있다.

다만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인 언급은 경축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여부가 결정되는 대법원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한·일관계에 대한 큰 틀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국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협의회에 불참한 피해자 측과의 의사소통을 추진하는 등의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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