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자포리자 원전 비무장화’ 서방 요구 거절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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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임명 행정 수반 언론 인터뷰
“비무장화 아닌 휴전 논의해야”
원전 빌미 자포리자 편입 의도
IAEA 사찰도 기싸움 이어져

러시아군 병사가 최근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지역을 경비하고 있다. 원전 일대에는 공격 주체를 알 수 없는 포격이 잇따라 가해지면서 방사능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 병사가 최근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지역을 경비하고 있다. 원전 일대에는 공격 주체를 알 수 없는 포격이 잇따라 가해지면서 방사능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 참사 우려가 커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일대에 휴전을 제안했다고 15일(현지시간) dpa통신이 전했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원전의 비무장화를 거부한 셈이다. 원전을 빌미로 자포리자 일대를 자국 영토로 완전히 편입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보도에 따르면 자포리자주 행정부 수반인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엔과 유럽연합(EU)은 원전의 비무장화가 아니라 휴전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러시아가 임명한 인사다.

현재 자포리자 원전 일대에는 위험천만한 포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올 3월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했다. 이후 단지 안에 병력과 대형 무기를 대거 배치하고, 러시아 국영 원자력에너지사 로사톰 출신 기술자들을 들여보내 원전 운영에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자로 6기를 보유한 자포리자 원전은 단일 시설로는 유럽 최대 규모다.

자포리자 원전 일대에 대한 잇단 포격으로 방사능 유출 등 핵 참사가 우려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에네르호다르의 러시아 점령군 측은 이날 “(우크라이나가)미국제 M777 곡사포를 이용, 원전 인근 지역과 주거지 등을 25차례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트위터에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원전에 포격을 쏟아부으면 전 세계가 자기네 조건을 받아들여 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원전 전력을 강탈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에 공급되는 전력은 차단하고 해당 전력을 러시아 점령지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자포리자 원전은 전쟁 전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공급의 약 20%를 책임졌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원전 점령을 규탄하며 원전 일대에 비무장화를 러시아 측에 요구해왔다. 한국, 미국, EU, 영국 등 42개국은 14일 공동 성명에서 “(러시아는)즉각 자포리자 원전 단지와 그 주변,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군 병력과 미승인 인력을 철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핵 재앙 위험을 경고하고 원전 일대를 비무장지대로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거부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의한 도발로부터 원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러시아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IAEA는 지난달부터 지속적으로 현장 사찰을 촉구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찰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진입 경로나 일정, 방식 등을 두고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자포리자 일대 휴전을 제안했지만 전력 강탈, 점령지 완전 편입 등의 이유로 실제 성사가 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자포리자 원전 상황에 대해 “전 세계가 원전 방어를 위한 힘과 결단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는 패배를 의미한다”면서 “전 세계가 테러에 패배하는 것이고 (러시아의)핵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를 촉구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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