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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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미(1957~ )

몇 십년동안 내 손목을 잡아온 명초당 원장님이 죽었다 죽었다는 말이 미처 죽기도 전에 명초당이 헐렸다 리모델링한 명초당엔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이 진료를 한다 아들은 리모델링한 아버지, 내림굿을 받은 무당처럼 내 손목을 잡는다 가만 가만 손목을 잡힌 나는 그가 명초당 원장 같다 첫 아이를 임신한 것을 맨 처음 알려준 그 사람 같다 나도 당신처럼 리모델링되고 싶어요 그는 자기는 아들이라고 말한다 원장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세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렇군요 세대가 바뀌었군요 명초당은 없군요 이곳은 행복한의원이군요 당신은 아버지를 지웠군요 아버지가 지워지기를 기다렸군요 그러니까 나를 리모델링해주세요 나는 딸을 낳지 않았어요

- 문예지 〈문학마당〉(2007 여름호) 중에서


극심한 경기 불황과 인플레로 도심 곳곳에 폐업 임대 안내문이 붙었다. 자영업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폐업한 곳에 다시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지고 개업 축하 화분이 늘어서는가 싶더니, 채 일 년도 안 돼 다시 폐업하고 새로 들어온 업주에 의해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된다. 이번엔 얼마나 갈까, 싶은 생각과 장사가 잘돼 정착했으면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인다. 시인은 단골 한의원이 헐리고 대를 잇는 리모델링 공사를 지켜보며, 자신도 리모델링되기를 소원한다. 사람과 장소와 이름이 바뀌고 세대까지 바뀌는 쓸쓸함에도 환대는 바뀌지 않은 듯, 나도 리모델링이 필요하구나, 싶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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