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저마다 쓰임이 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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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자기라는 여러해살이 풀이 있다. 벼를 좀 닮았는데, 연못이나 늪의 얕은 물에서 자란다. 7~10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를 맺는다. 다 크면 어른 허리 정도에 닿는다.

옛날에는 이 매자기로 비를 가리는 갓 따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자기’라는 이름이 ‘매자+갓’에서 유래했다는데, ‘매자’는 ‘맺다’(만들다, 영글다)와 어원이 같고, 갓의 고어가 ‘갇’ 또는 ‘긷’이라는 거다. 여하튼 그런 설명이 있다.

한방에서는 이 매자기를 약초로 요긴하게 쓴다. 어혈을 제거하고, 여성의 월경불순을 낫게 하며, 막힌 기를 원활히 통하게 하고, 소화에도 도움을 주는 등의 효과를 본다고 알려져 있다. 요컨대 매자기는 쓸모가 많은 것이다.

매자기와 비슷한 종류로 새섬매자기가 있다. 매자기와는 달리 소금기 있는 해안 습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탓에 매자기보다 작지만 성질은 더 억세다. 작고 볼품없다 해서 좀매자기, 졸매자기로 불리기도 한다. 어찌 된 셈인지 새섬매자기의 꽃말도 체념, 포기, 단념 등 부정적이다.

이 새섬매자기가 농사짓는 사람한테는 참 골칫거리다. 간척지 논에서 지겹게 생겨난다. 모 심은 지 열흘쯤 뒤에 보이기 시작해 한 달쯤 뒤면 벼보다 더 크게 자라며 논의 양분을 다 빨아먹는다. 농부로선 얼른 없애야 할 잡초지만, ‘제초제 저항성 잡초’로 분류돼 있을 정도로 농약을 뿌려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환경부 등이 16일 ‘낙동강 하구 새섬매자기 모종 식재 행사’를 열었다. 8월 말까지 부산 강서구 명지와 을숙도 일원 갯벌에 새섬매자기 모종 6만 포기를 심을 요량이란다. 이유인즉슨, 새섬매자기의 땅속 덩이줄기가 고니 같은 겨울 철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라는 거다.

옛날에는 낙동강 하구에 새섬매자기가 엄청 많이 자랐는데, 지난 10여 년 새 그 서식지가 크게 줄었고 그 때문에 고니 등 겨울 철새도 급감한 실정이다. 이 겨울 철새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새섬매자기 서식지를 반드시 복원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하등 필요 없어 제거해야 하는 잡초에 불과한 새섬매자기가 철새에겐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이라니, 그 이치가 놀랍다. 세상에 난 것은 모두 저마다의 쓰임이 있는 법이다. 너른 갯벌에 뿌리 잘 내려 무성해진 새섬매자기로 인해 낙동강 하구 일원이 다시금 철새의 낙원이 되기를 기원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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