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72. 굴러가는 곶감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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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우직한 탕웨이, 장난기 많고 지독한 프로페셔널”〉

〈조보아, 선입견을 깨부수며 성장하는 우직한 노력파〉

이런 제목, 탕웨이나 조보아를 칭찬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우직하다(愚直하다): 어리석고 고지식하다.(우직한 일꾼./우직한 사나이./우직하게 일하다./우직하게 생기다./…/우례는 마음이 짠하다. 종살이 누대에 요령도 생길 법하건만, 소례는 어미를 닮았는지 아비를 닮았는지 힘 좋고 우직하기 마치 소와 같아서.〈최명희, 혼불〉

묵묵히 맡은 일을 한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니, 당황스럽다는 사람이 꽤 많을 듯. 하여튼, 이러면 사전이 이상한 것인가, 말무리(언중)가 이상한 것인가. 한데, 사전 뜻풀이와 말글살이 간에 거리가 있는 말은 이뿐만이 아니다.

〈달달 담백한 영동 곶감이 디저트로! 현지의 맛과 멋이 있는 영동 카페 3 #소도시여행〉

이 제목에 나온 ‘달달(하다)’ 역시 표준사전을 찾아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달달하다: ①춥거나 무서워서 몸이 떨리다. 또는 몸을 떨다. ②작은 바퀴가 단단한 바닥을 구르며 흔들리는 소리가 잇따라 나다. 또는 그런 소리를 잇따라 내다.(자전거가 달달하는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즉, ‘달달하다’에는 달콤하다거나 단맛이 난다는 뜻은 전혀 없는 것. 곶감이 달달하다고 하면 떨고 있거나 바닥을 굴러간다는 말이 될 뿐이다.

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은, ‘우직하다/달달하다’를 사전 뜻풀이에서 벗어나게 써서는 안 된다. 말글살이를 반영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져서 뜻풀이가 바뀌거나 뜻이 추가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사전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달달하다’ 대신 ‘달곰하다, 달콤하다, 달곰삼삼하다, 달금하다, 달큼하다, 달짜근하다, 달짝지근하다, 달차근하다, 달착지근하다, 달크무레하다, 알근달근하다’를 쓸 수 있으니 참고하실 것.)

윤석열 대통령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적 부문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두텁게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했다. 한데, 여기 나온 ‘두텁다’도 사전 뜻풀이를 벗어난 말. 표준사전을 보자.

*두텁다: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두터운 은혜./신앙이 두텁다./친분이 두텁다./정이 두텁다./두터운 교분을 유지하다.)

즉, ‘두텁다’는 사람의 마음과 관계에 관해서만 쓰는 말인 것. 그러니, 그걸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 ‘두껍다’나 ‘두툼하다’로 쓰면 된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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