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견원지간’서 ‘밀월 관계’로? 울산 검경 수장 이례적 동행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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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환 지검장·박성주 경찰청장
현대중·현대차 동반 산업 시찰
고래고기 사건 등 묵은 앙금 털고
산업안전 화두로 화해 기류 물꼬
두 수장 경찰대 동문 학연도 눈길

노정환(왼쪽) 울산지검장과 박성주(오른쪽) 울산경찰청장이 17일 울산 현대중공업 생산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상균 사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울산경찰청 제공 노정환(왼쪽) 울산지검장과 박성주(오른쪽) 울산경찰청장이 17일 울산 현대중공업 생산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상균 사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울산경찰청 제공

울산 검경을 대표하는 두 수장이 이례적으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산업 현장 동반 시찰에 나섰다. 한때 검경 갈등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얼어붙었던 두 기관 사이가 산업안전을 화두로 ‘해빙 분위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정환 울산지검장과 박성주 울산경찰청장은 17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생산 현장 등을 잇달아 방문해 관련 시설을 점검하고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부터 찾아 회사 관계자로부터 각종 안전 조치 사항 등을 들었다. 오후에는 현대자동차 주요 생산 라인과 자동차 선적 부두 등을 둘러봤다.


검찰과 경찰은 이들 수장의 산업 현장 동반 시찰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노 지검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관련 국내 대표 기업이 자리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정확하고 합리적인 법 적용을 위해 직접 시찰이 필요하다고 봤다. 울산경찰청장과 중대재해 예방, 근로자 안전 보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기업이 근로자 안전 보장을 확보하고자 실제 노력하고 있고, 산재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번 시찰을 계기로 기업이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더욱 노력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가 지니는 의미는 다양하다. 먼저 울산지역 검경 수장이 나란히 산업현장 동반 시찰에 나선 것은 양 기관 설립 이래 처음이다. 노 지검장과 박 청장은 6월 말 잇따라 취임 후 서로 인사차 양 기관에 오가며 산업현장 동반 시찰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울산이 산업도시인 만큼 지검장과 청장 사이에 자연스럽게 산업안전과 관련된 얘기가 오갔고, 말이 나온 김에 대표 기업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로 동반 시찰을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쪽으로 대화가 급진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 지검장과 박 청장이 경찰대학교 동문인 점도 두 사람의 동행에 긍정 요소로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노 지검장은 경찰대 법학과를 나와 울산에서 경찰관과 검사를 모두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기관장 대 기관장’의 만남에서도 경찰대라는 공통분모가 한몫 거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두 수장의 이번 공동 행보는 산업현장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체의 경각심을 높이고, 검경 협력체계 강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역 검경이 이번 일을 계기로 묵은 앙금을 털어내고 관계 회복을 도모할지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울산 검경은 그간 ‘울산 고래고기 사건’과 ‘가짜 약사 사건 피의사실 공표 논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을 놓고 서로 칼끝을 겨누며 대립한 탓에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고래고기 사건은 울산지검이 2016년 울산 중부경찰서에 압수된 불법포획 밍크고래 27t 중 21t(시가 30억 원 상당)을 검사 출신 변호사를 낀 유통업자에게 돌려줘 장기간 갈등을 빚은 사건이다. 2019~2020년에는 검찰이 울산경찰청을 상대로 ‘가짜 약사 구속 사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배포한 수사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했는데, 하필 이들이 고래고기 사건을 맡았던 수사관이어서 검찰의 보복성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일련의 사태를 겪은 뒤 두 기관이 표면적으로 크게 대립하는 사건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관계를 풀어 낼 계기 또한 없었다. 이번 산업현장 동반 시찰이 두 기관의 관계 회복에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이다.

검경 안팎에서는 “검경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인식과 위기의식도 자리 잡고 있다”며 이번 수장들의 산업현장 방문을 계기로 ‘울산 검경 화해 무드’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감지된다.

노 지검장과 박 청장은 오는 31일 SK에너지, 새울원자력본부를 함께 방문해 안전 사항을 확인하는 등 지속해서 산업안전 문제에 관심을 쏟을 계획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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