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창극 '귀토'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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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부장

지난 주말 부산시민회관에서 국립창극단의 ‘귀토’공연을 봤다. 연기 노래 음악 무대장치까지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었다. 창극 특유의 해학과 흥겨운 가락에 공연 내내 웃음이 넘쳤는데 정작 공연장을 나오는데 울컥한 기분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많이 알고 있는 판소리 ‘수궁가’의 마지막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간을 두고 왔다는 거짓말로 용궁을 빠져나온 토끼는 마침내 처자식을 만나는 순간, 독수리에 잡혀 생명을 다한다. 토끼의 처 역시 포수의 총에 목숨을 잃고, 천애 고아가 된 토끼의 아들 토자. 토자는 삼재 팔란, 위험만 가득한 산중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가기로 한다. 토자는 생전 처음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저곳이 바로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믿는다.

마침 바닷가에는 거짓말에 속아 토끼를 놓친 후 새로운 토끼를 잡으려는 거북이가 있었다. 바다 세상에 가고 싶다고 먼저 말하는 토자를 만나 얼른 용왕에게 데려간다. 용궁에 도착하자 거북이는 돌변하고 토자는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제야 토자는 용궁은 자신이 그리던 신세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천신만고 끝에 산중에 돌아온 토자. 자신이 살던 터전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공연을 본 후 울컥해진 건 ‘귀토’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제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이걸 하겠다’고 미루던 이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러나 삼재 팔란이 가득한 산중이라도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토자처럼, 우리도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대 안에서 우리만의 삶을 현명하게 이어 나가야 한다. 바람을 피할 방법만 찾지 말고,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딛고 선 여기, 지금이 가장 소중한 터전이자 시간이다.

그나저나 창극을 이번에 처음 본 10대 아들은 “미국서 봤던 브로드웨이 뮤지컬들보다 창극이 더 재미있다. 창극에 나오는 판소리가 내가 좋아하는 랩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진지한 감상평을 남겼다. 지겨워할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다.

10대에게도 통하는 한국 창극! 많은 이들이 그 매력을 느껴 보길 추천한다. 국립창극단 ‘귀토’ 부산 공연은 끝났지만, 8월 말·9월 초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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