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IAEA 시찰 동의… 원전 대재앙 위기 ‘변곡점’ 되나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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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원전 일대서 전투 이어져
러·우크라, 서로 ‘네 탓’ 공방
튀르키예 대통령 등 중재 나서
푸틴, 시찰 공감… 9월 초 가능성

우크라이나 구조대원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포격으로 부서진 남부 보즈네센스크의 한 아파트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일대는 피우데누크라인스크 원전과 불과 30km가량 떨어져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구조대원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포격으로 부서진 남부 보즈네센스크의 한 아파트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일대는 피우데누크라인스크 원전과 불과 30km가량 떨어져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의 ‘핵 재앙’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포격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 원전에 이어 우크라이나 남부 원전 인근 도시까지 포격 피해를 입었다. 원전 일대에서 아찔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의 원전 시찰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은 2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한 자포리자 원전 관리동 건물 부지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자포리자 주정부는 텔레그램 채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드니프르강 반대편에서 포격을 가했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사용하는 155mm 포탄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드니프르강 인근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반복적으로 마을을 폭격했다”며 반박했다.


자포리자 원전에는 이달 5~6일과 11일에도 아찔한 포격이 가해졌다. 현재 자포리자 원전과 외부를 잇는 4개의 고압 전원 공급선 중 2개가 파괴된 상태다. 특히 이번 포격은 예고된 것이었다. 러시아 측은 지난 18일 “우크라이나가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에 맞춰 자포리자 원전에서 도발을 준비 중”이라며 원전이 19일 공격을 받을 거라고 예고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측은 “원전 직원 대다수에게 19일에 출근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러시아가 대규모 도발을 계획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포격은 양측이 예고한 다음 날 이뤄졌지만, 결국 원전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20일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보즈네센스크 주거지역에서도 러시아의 포격이 이뤄졌다. 이곳은 피우데누크라인스크 원전과 불과 30km가량 떨어진 동네다. 이번 포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12명이 다치고 5층짜리 아파트 등이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사 에네르고아톰은 이날 “러시아가 원전을 노려 쏜 미사일이 마을에 떨어졌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전 위협에 따른 핵 재앙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국제사회는 양국 간 중재 역할에 힘쓰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날 자포리자 원전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중요한 단계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1986년 체르노빌 사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푸틴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자포리자 원전 안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도 핵 재난을 막아야 한다며 IAEA 조사단 시찰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하일 울리야노프 러시아 대사도 방문 시기와 관련해 “내 느낌으로는 시찰의 목적, 임무와 무관한 외부 요인이 생기지 않는 한 9월 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찰단 임무, 방식 등 세부 사항을 두고 입장차가 여전하고 전쟁 상황도 격화되고 있어 IAEA 시찰 성사를 낙관하기엔 이르다. 한편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일 자포리자 원전 포격에 대해 “체르노빌 원전 사태와 같은 대재앙은 일어날 개연성이 크지 않지만 방사선 누출 위험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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