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메가 가뭄과 헝거 스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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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있는 곳에서 인류가 번성하고, 도시 국가가 성장했다. 실제로 인류 4대 문명은 모두 강과 관련이 있다. 강이 가져다준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식량 생산이 한결 쉬워지면서 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물에서 시작한 4대 문명 대부분은 가뭄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티그리스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 사이 유역에서 1000년 이상 승승장구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기원전 7세기 지속된 대가뭄이 멸망의 원인이 됐다. 기록에 따르면 찬란했던 인도 인더스 문명,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도 대가뭄으로 비옥한 땅이 마르면서 곡식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면서 극심한 기근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도시 국가의 늘어난 인구에 식수와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서 내부 반란과 주변 소국의 독립 등 멸망으로 이어졌다.

문명의 운명까지 결정지었던 극한 가뭄이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중북부 등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서남부 지역은 1200년 만의 대가뭄이 23년째 이어지면서 잔디에 물 주는 것조차 규제할 정도이다. 중국 양쯔강도 강 수위가 15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600년 된 불상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정부는 인공비를 내려 양쯔강 수위를 올리기 위해 ‘구름 씨 뿌리기’ 사업까지 시작했다.

유럽에는 16세기 이후 500년 만이라는 최악의 가뭄이 지속되면서 스페인 발데카냐스 저수지에 잠겨 있던 ‘과달페랄 고인돌’이 육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 스톤헨지(Stonehenge)라고 불리던 이 고인돌은 4000~7000년 전 태양을 숭배하던 사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일의 라인강과 이탈리아의 포강, 체코의 엘베강 등도 말라 가면서 ‘헝거 스톤(Hunger Stones)’으로 불리는 기근석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가뭄의 지표인 헝거 스톤에는 “Wenn du mich seehst, dann weine(날 보면 울어라)”라고 새겨져 있다.

이처럼 단순히 몇 달 비가 안 오는 ‘그냥 가뭄’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메가 가뭄(Mega Drought)’으로 기후 재앙이 악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상 기후는 메가 가뭄의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 세계가 가뭄과 기근으로 심각하게 고통받지 않을까라는 위기감마저 들 정도이다. ‘날 보면 울어라’는 헝거 스톤을 보기 전에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점점 마음만 바빠진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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