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호모 루덴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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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라이프부 차장

남부러운 것 없어 보였다. SNS에서 접한 그는 사업가로서 매사에 똑 부러졌고, 부모로서 교육관도 확고했고 ‘쿨’했다. 그의 일상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여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올린 글에는 퍽 공감이 갔다. ‘취미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멈칫했다. 먹고살기 힘들 만큼 가난했던 20대, 아이들을 위해 일만 했던 30대. 그 질문 하나에 눈물까지 날 일인가 싶었다. 열심히 살았다지만 씁쓸했다.’

얼마 전 ‘나만의 플레이모빌’을 만들고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는 취미를 가진 분과 인터뷰했다. 질문에 대답하는 내내 그는 생기가 넘쳤다. 취미 생활이 주는 행복감은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나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취미가 있나’ 떠올리면서 SNS 속 그도 생각났다.

즐기는 것이 목적인 ‘취미’는 곧 ‘놀이’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인간을 지칭하는 여러 호칭 중 ‘호모 루덴스’라는 것이 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요한 하위징아가 저서 〈호모 루덴스〉를 통해 정의한 것이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그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은 ‘호모 루덴스의 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른이 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어린이에게는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놀이’를 가르치지만 정작 어른에게는 비생산적인 ‘놀이’에 시간을 쓰지 말고 좀 더 생산적인 활동에 힘쓰라고 종용한다. 예를 들면 게임을 할 시간이 있으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한다.

독일 노르베르트 볼츠 교수는 〈놀이하는 인간〉에서 ‘19세기까지는 생산자의 시대, 20세기 소비자의 시대, 21세기는 놀이하는 사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미가 돈이 되고 직업이 되는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됐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서서 여가 생활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는 ‘덕업일치’는 흔한 일이 됐다. ‘부캐’가 ‘본캐’가 된 유튜버나 웹툰 작가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도 책 〈열두 발자국〉에서 “놀이는 인간의 내재된 본능이며 심지어 뇌의 여러 영역을 발달시켜 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어른들이 제대로 놀 수 있도록 놀이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준다며,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자신의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한다.

식물, 산, 요가, 피트니스, 피아노, 뜨개, 순정만화, 술, 스릴러, 기타, 달리기, 서핑, 하루키…. 〈아무튼, ○○〉 에세이 시리즈의 주제들이다.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되는 한 가지’를 담고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들이지만 작가만의 생각과 이야기가 큰 공감을 받고 있다. 나만의 ‘아무튼’으로 나만의 삶을 써 내려가는 숨은 작가가 돼 보는 건 어떨까.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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