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해외입양인 53명 “국가·입양기관의 인권 침해 밝혀 달라”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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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진실화해위에 첫 조사 신청
뇌물·문서 위조·가짜 호적 등
불법 입양 관련 자료도 제출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 공동대표인 피터 뭴러 변호사(오른쪽)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 덴마크 입양인 인권 침해 조사를 정식 신청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뿌리의집 제공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 공동대표인 피터 뭴러 변호사(오른쪽)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 덴마크 입양인 인권 침해 조사를 정식 신청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뿌리의집 제공

덴마크 해외입양인들이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입양 과정에서 국가와 사설 입양기관이 자행한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해외 입양인이 집단적으로 진실화해위에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덴마크 입양인으로 구성된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은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을 찾아 조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DKRG의 공동대표이자 이번 신청을 주도한 변호사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48) 씨를 비롯한 조사 신청인들은 모두 53명으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됐다. DKRG는 덴마크 입양인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 해외입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175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번에 53명이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한 데 이어 다른 회원들도 순차적으로 조사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인구 550만 명인 덴마크에는 한국 해외입양인이 9000명에 이르며, 이들 중 88%가 1963년부터 1993년 사이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이들은 대부분 부산과 서울, 인천 출신의 아동들이었다.

DKRG의 신청 자료에 따르면 해외입양 과정에서 강압과 뇌물, 문서 위조, 부실 행정, 문서·기록 미비, 가짜 고아 호적 등을 통한 불법 입양의 양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입양인은 자신이 고아인줄 알았지만 부모의 신원이 입양기관에 알려져 있었거나 생년월일이 허위로 기재된 경우다. 심지어 보낼 아이가 입양 전에 사망하자 입양기관이 다른 아이를 죽은 아이로 신분을 세탁한 뒤 덴마크로 보낸 사례도 있다. 서류상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표기됐지만 덴마크에 도착한 뒤 병들고 영양실조까지 걸려 당장 입원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덴마크로 이송 중 항공기에서 사망한 아동도 있었다.

신청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한국 정부가 자국의 가장 어린 국민인 아동의 인권을 보호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DKRG 측은 "해외입양은 결코 입양기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고 정부의 허용과 승인, 허가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불법 입양에 개입하고 해외입양인의 인권 침해를 초래했는지 진실화해위가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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