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남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갑수(1973~ )

배롱나무 가지 위에

고요히 얹힌 보름달

한참을 바라보아도

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바다 가까운 어느 마을

홀로 된 어미들은

바다 소리와 함께 잠이 들고

설움도 사랑도

갯가에 널어놓은

손 시린 겨울의 자정

기다리지 말거라,

남포는 밤새

유리창을 밝히다

소리 없이 말라만 갔다


- 시집 〈단 한 번의 사랑〉(2021) 중에서


시에서 남포는 남포등을 말한다. 석유를 넣고 심지에 불을 붙인 뒤 유리용기를 씌워 바람을 막은 등이다. 시인은 갯가 마을 홀로 된 어미가 있는 가난한 집의 남포등을 불러내어 오래 잊고 있었던 바닷가의 서정을 환기시킨다.

설움도 사랑도

널어놓은 갯가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이 시를 읽으니, 중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인적이 드문 광안리 바닷가를 자주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백사장 위에 덩그러니 올라 있던 고깃배와 바다를 바라보던 낮은 지붕의 횟집들, 포장마차, 난전에서 해삼이며 멍게 회를 팔던 아주머니들. 지금은 몰라보게 고층빌딩들이 들어섰다.

성윤석 시인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