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열받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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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썰매, 얼음이, 남극이…. 한국이라는 낯선 땅의 좁은 동물원 우리 속에서 무더위를 견디면서 살아야 했던 북극곰들의 썰렁한 이름이다. 최후의 북극곰은 1995년 경남 마산 돝섬 유원지에서 태어난 ‘통키’였다. 당시에 화제였던 ‘피구왕 통키’처럼 인기가 많은 북극곰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통키는 용인 에버랜드로 이주해 생활하다 쾌적한 영국의 한 야생동물 공원으로 보내질 예정이었지만 2018년 한국에서 생을 마감한다. 북극곰은 활동 반경이 엄청나다. 한 번 물에 들어가면 100km는 거뜬히 헤엄친다. 이런 북극곰을 열악한 동물원 우리 속에 가둬 놓으니 곧잘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던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22일부터 부산역 광장에 한국 땅에서 사라졌던 북극곰이 다시 등장했다. 그린피스가 ‘에너지의 날’을 맞아 설치한 폭 5m, 높이 6m의 대형 조형물인 ‘열받곰’이다. 그런데 모습이 심상찮다. 순백이어야 할 얼굴이 술에 취한 것처럼 벌겋다. 무척이나 더운 듯이 땀을 흘리면서 손 선풍기를 들고 열을 식히는 모습이다. ‘열받곰’은 ‘열받네’와 ‘북극곰’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들고 있는 ‘너무 더워서 열받곰’, ‘기후재난 두렵곰’, ‘재생에너지 늘리곰’이라는 플래카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북극곰,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고 있다. 북극곰이 아무리 헤엄을 잘 쳐도 삶의 터전은 빙하라는 공간이다. 빙하가 있어야 바다사자를 사냥하고, 짝짓기해서 새끼를 키울 수가 있다. 현재 북극의 평균기온 상승률은 지구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지구 온난화로 빠르게 녹고 있다. 올라갈 빙하가 없어져 북극곰이 탈진해서 익사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북극곰 신세가 참 딱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극은 한반도와는 너무나 멀다.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 경제에도 좋다고 하니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소식은 어떤가. 그 많던 알래스카 킹크랩과 대게가 사라졌다고 한다. 미국 알래스카 바다에서 서식 중인 대게 개체 수가 지난해 10분의 1로 급감하면서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이다. 아직까지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북극곰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잘못되고 있다는 의미다. 북극곰 다음 순서는 바로 우리 인간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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