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 국가가 배·보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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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 구제, 후속 조치 난관
특별법 제정 등 국회·정부의 협업 절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로 처음 공식 인정했지만, 아직 피해자들을 위한 배·보상 등 후속 조치까지는 갈 길이 멀다. 24일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오열하고 있는 모습. 김종호 기자 kimjh@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로 처음 공식 인정했지만, 아직 피해자들을 위한 배·보상 등 후속 조치까지는 갈 길이 멀다. 24일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오열하고 있는 모습. 김종호 기자 kimjh@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로 처음 공식 인정함으로써 명예 회복과 피해 구제의 물꼬를 튼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참혹한 인권 유린을 겪은 피해자들을 위한 국가의 배·보상 등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실화해위의 권고만으로는 아직 길은 멀기만 하다. 진실화해위가 국가 책임임에도 후속 조치에 대해선 정부에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 형식으로 촉구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국가 책임이라고 밝혔지만, 앞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와 피해 구제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방증이다.

우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국가 기관의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 기관 중 어느 기관이 구체적인 책임이 있는지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당시의 내무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기부나 경찰이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국가의 공식 사과를 권고한 진실화해위의 촉구가 현재 상황에선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 수도 있는 셈이다. 벌써 행정안전부가 진실화해위의 권고 통지 방침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점은 그래서 매우 우려스럽다. 책임 기관이 확정되지 않으면 향후 피해 배·보상 절차의 매끄러운 진행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책임이 명백한 만큼 배·보상은 당연하지만, 이 역시 현재로서는 난관이 적지 않다. 진실화해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법률 근거가 부족해 직접적인 배·보상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형제복지원 관련 특별법이 아직 없어 피해 구제를 받으려면 지금은 개개인이 별도로 청구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피해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결국은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여야 정치권이 역할을 해 줘야 한다. 35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피해자들이다. 다수 피해자의 바람이 국회 때문에 막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진실화해위의 발표처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피해 구제를 위한 총괄 책임은 국가에 있다. 정부는 따라서 실질적인 후속 조치를 위해 책임 기관을 하루빨리 지정하고, 특별법 제정에도 국회와의 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끔찍한 국가 폭력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 위로를 위해 국정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 표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진실화해위가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는 피해자들의 처절한 노력과 시민단체, 부산 대표 언론인 〈부산일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와 부산시가 시민사회에 큰 빚을 진 셈이다. 이제 피해자들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는 일은 정부와 부산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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