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구두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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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수해 현장에도 구두 신고 현황 점검
디테일에 더 깊은 함의, 잊지 말아야
작은 문제도 국민 눈높이 배려 중요

고두현 시인에 따르면 이력서의 ‘이력(履歷)’에 ‘신발 리(履)’자를 쓰는 이유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그 사람의 신발이 걸어온 역사가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신발이 걸어온, 그리고 걸어가는 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나아가는지를 온전히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구두에 얽힌 일화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의 구두라고 하면 ‘열정 열차’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직 대선 후보였던 지난 2월, 기차를 타고 참모들과 이동하던 중 구두를 신은 채 두 발을 반대편 의자에 올려놓은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공공이 사용하는 좌석에 구두를 신은 채 발을 올려놓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도, 시민 의식도, 공중도덕도 결여된 행동임을 지적하고 비판했다.


구두 논란은 나아가 대통령 후보의 검사 시절, 아버지뻘 되는 기업인을 불러내 자기 구두 속에 술을 따라 마시게 했다는 항간의 소문까지 소환하였다. 여론이 악화하자, 선거 캠프에서는 다리에 경련이 일어 참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다리를 올려놓았으며 세심하지 못했던 부분은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맞은 첫 주말, 윤 대통령 부부는 깜짝 나들이에 나섰다. 대통령 부부는 백화점에서 구두 한 켤레를 구매하고 시장에서 음식을 포장해 갔다. SNS 등으로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일반 시민들은 길이 막히는 주말에 교통 통제까지 해 가며 한낱 구두 쇼핑을 굳이 해야 했느냐는 불만을 쏟아 냈다.

일각에서는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여느 시민처럼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줄을 서서 계산하는 모습과 비교하며 대통령이 시민들 속으로 격의 없이 들어왔다는 긍정 평가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메르켈 전 총리는 재임 16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고, 윤 대통령은 이후 이런 행보가 없었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이달 8일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이 비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대통령은 다음 날 수해 현장을 찾아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내를 받으며 사고 현장과 피해 복구 현황 등을 점검하였다. 문제는 현장을 안내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데 반해 대통령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는 데 있다. 이에 최소한의 기본도 챙기지 못한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혹자는 대통령이 수해 현장을 점검하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 내놓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구두를 신었는지 운동화를 신었는지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구두와 관련된 일련의 논란을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는다고 치부해 버린다. 나아가 사소한 문제를 핑계로 오히려 문제의 중요한 본질을 훼손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이는 마치 수해 복구 봉사 활동에서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사진이 잘 나오게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는 망언으로 비판이 일자, “작은 것 하나하나만 보지 말고, 큰 줄기를 봐 줘”라고 옹호한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인식과 발언은 본래 취지와 다르게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는 원망일 뿐,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게 책임을 지는 태도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대통령은 문손잡이를 어디에 달지 무슨 색깔로 할지를 결정하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기보다 어떤 재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국민의 집을 설계하고 터를 다져 기초를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문손잡이를 너무 위에 달면 어린아이가 문을 열지 못하고, 문 앞에 계단을 만들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문손잡이를 애초에 잡을 수조차 없게 된다. 어찌 보면 사사로울 수 있는 문손잡이를 통해 국민은 집 전체를 판단한다. 따라서 문손잡이는 사소한 디테일이 아니라 이 집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집인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된다.

어디 문손잡이뿐이겠는가. 전등 스위치, 수도꼭지 등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모든 것이 실은 사사롭지 않으며 때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세부 디테일은 실무진들의 책임이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취임 100일 즈음에 기하여 사소해 보이는 작은 문제까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부터 바꾸겠다’며 ‘구두’를 벗고 국민에게 큰절을 올리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약속을 다시 상기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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