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면 목숨 위협… ‘배 속의 시한폭탄’ 복부대동맥류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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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족력·장기 흡연 등 원인
대동맥이 급성으로 부푸는 증상
일단 파열되면 절반가량 숨져
금연 등 예방 위한 노력 필수

혈관외과 이상수 교수팀이 대한혈관외과 전임의들을 대상으로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혈관외과 이상수 교수팀이 대한혈관외과 전임의들을 대상으로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시연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40년 넘게 하루 한 갑씩의 담배를 피워 온 A(78) 씨는 언젠가부터 아랫배에서 두근거리는 덩이가 만져졌지만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중 A 씨는 건강검진 차 받은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지름 6cm의 복부대동맥류를 진단받고 황급히 대형 병원을 찾았다.


■파열 후 손 못 쓰면 100% 사망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온몸의 장기로 보내는 우리 몸에서 가장 큰 혈관이다. 복부대동맥류는 배를 지나는 복부대동맥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정상 기준인 직경 2cm보다 50% 이상 부푸는 경우를 말한다. 대동맥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지만, 이 벽이 노화나 변성으로 인해 얇아지게 되면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대동맥류가 발생하게 된다.

복부대동맥류는 수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증상을 느끼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A 씨처럼 검진으로 알게 되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고, 대부분은 그 존재를 모른 채 병을 서서히 키우게 되고, 막상 증상이 시작될 때는 파열 직전이나 파열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파열 이후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100% 사망에 이르러 흔히 ‘뱃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복부대동맥류는 지름이 클수록 파열위험도 커진다. 지름이 5cm 이상이면 연간 4%, 6cm가 넘으면 연간 10~20%, 7cm 이상이면 연간 20% 이상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혈관외과 이상수 교수는 “복부대동맥류는 일단 파열되면 과다 출혈이 발생해 응급처치 여부와 관계없이 10명 중 4~6명은 병원 도착 전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라며 “다행히 응급 상황이 아닌 정규 수술이라면 사망률은 3% 이하로 대폭 낮아진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복부대동맥류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3670명에서 2019년에는 1만 1031명으로 10년간 3배가량 증가했다. 60대 이상 남성이 전체 환자의 70%를 차지한다.


■주기적 검진 필수, 고령자는 금연해야

복부대동맥류는 자각 증상이 없는데다, 일단 증상이 발현되면 미처 손을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방과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

복부대동맥류의 대표적인 위험 인자로는 고령과 가족력, 흡연, 고혈압,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이 꼽힌다. 남성이 여성보다 발병위험이 4.5배 높고,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5.5배 높다. 담배를 피우는 65세 이상 남성의 4.5%가 복부대동맥류를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복부대동맥류는 초기 선별검사로 초음파 진단이 가능하다. 선별검사에서 이상 유무가 확인되면 혈관CT 촬영을 통해 정확한 혈관구조까지 파악한다. 가족력이 있다면 남성은 55세부터, 여성은 65세부터 권고대상이 된다. 작은 복부대동맥류 (2cm 이상, 5cm 미만)로 이미 검진 받았다면 1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초음파 또는 복부 혈관 CT를 촬영해야 한다. 일상에서 갑자기 복통이 있을 경우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상수 교수는 “흡연은 복부대동맥류 진행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혈관벽이 노화한 고령자가 흡연을 자제 못하면 대동맥류의 진행이 더욱 가속화된다”며 “이 때문에 65세 이상 흡연 남성이라면 적극적인 금연 노력과 함께 주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 70% 스텐트 삽입술로 치료

복부대동맥류의 치료방법으로는 개복수술과 함께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이 있다. 개복수술은 복부를 열어 인조혈관을 정상 혈관과 봉합하는 방법이다. 수술 후 통증과 흉터를 남기고, 회복기간도 수술 후 10일 정도로 길며, 절개에 따른 심폐혈관계 합병증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환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수술 후 추적관찰이 필요하지 않고 재수술 가능성도 낮다는 장점도 있어 일반적으로 비교적 젊고 건강한 환자들이 선호한다.

스텐트 삽입술은 허벅지의 동맥을 따라 혈관 내 접근을 통해 복부대동맥류 내에 인조혈관으로 둘러싸인 금속망을 펼치는 방법이다. 비정상적인 대동맥류 혈관벽에 혈압이 전달되지 않도록 복부 상하부의 정상적인 혈관을 파이프로 연결한다. 수술 후 절개 부위가 매우 작고 시술시간이 짧으며 통증도 거의 없고 입원과 회복기간도 하루나 이틀 정도로 짧다.

다만 대동맥이 많이 휘었거나 스텐트가 안착할 정상적인 혈관이 거의 없는 경우는 수술이 쉽지 않고 예후도 좋지 못하다. 또한 시술 후 혈관의 노화나 스텐트 그라프트의 예기치 않은 이동은 없는지 1년에 한 번씩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복부대동맥류 환자의 70% 정도가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을 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합병증 줄여

복부대동맥류 환자는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수술 자체가 가지는 위험도 커서 다양한 합병증이 수반될 수 있다. 그렇기에 수술을 염두에 둔다면 많은 치료 경험과 좋은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대동맥류와 같은 고난도 혈관 수술을 받는다면 하이브리드 수술실이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균수술실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수술실은 혈관조영 장비와 검사, 수술을 모두 시행할 수 있는 수술대, 환자의 치료 결과 평가 장비 등 첨단 의료기기를 구축해 치료에 대한 편의성과 안정성을 높인다. 특히 신경과, 신경외과, 혈관외과, 마취의학과 등 전문 의료진들의 유기적 협진과 시스템 진료를 통해 고위험군 혈관질환 환자들에게 신속하고 통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양산부산대병원이 2016년 하이브리드수술실을 갖춰 7년째 운영 중에 있다. 지난해 총 1733례의 수술 및 시술을 시행했고, 복부대동맥류의 경우 2020년 100세 환자를 수술하는 등 올해 8월까지 500례에 육박하게 달성했다. 이상수 교수는 “하이브리드 수술 활성화를 통해 복부대동맥류와 같은 고위험군 질환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높이고, 합병증 발생은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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