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차례상에 올라가는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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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언 (주)백화수산 대표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도 이미 지나고, 우리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바로 코앞이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는 이후 전 세계로 퍼지면서 모든 일상을 멈추게 하는 유례 없는 시련을 주었다.

우리나라도 비대면 거리 두기 등으로 그동안 가족 모임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3년 만에 예전 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이번 추석은 조심스러운 가운데 모처럼 가족 간 정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조상 음덕 소망, 제물로 많이 올려

영양식품 인식 갈수록 수요 늘어

최근 어획 급감, 수산업 현실 대변


추석에는 아무래도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추모 의식인 차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집집마다 방식은 다르겠으나, 대체로 절을 하기 전 식탁에 특색 있는 공물을 올린다. 차례 음식 역시 지역마다 특징이 있는데, 경상도에서는 제사상에 문어를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하필 문어일까? 문어라는 명칭과 그 습성에 실마리가 있다. 문어(文魚)는 이름에 벌써 ‘글월 문(文)’자가 들어 있어, 경북 안동 일대에선 선비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문어가 바다 깊은 곳에서 최대한 몸을 낮춰 생활하는 습성을 보고 ‘양반 고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위험한 순간에 뿜어내는 시커먼 액체는 선비가 늘 가까이해야 하는 먹물과 같은 것으로 여겨, 후손들이 과거에 급제해 가문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음덕을 베풀어 달라는 소망도 담았다.

예전엔 명절에만 볼 수 있어 고급 수산물로 꼽히던 문어가 요즘은 대중적인 수산물이 됐다. 최근 10년간 문어 소비량은 전국적으로 증가 추세다. 미식가들이 주로 찾던 문어의 맛과 효능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소· 돼지 등 육류 소비를 줄이려는 사람들이 대체 단백질 공급원으로 선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건강이 더욱 강조되면서 식품 구매에도 고단백 저지방 음식이 대유행이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 딱 맞는 먹을거리가 바로 수산물이다. 다른 수산물도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문어는 인체에 필요한 성분인 타우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요즘에는 소량으로 손질해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간편하게 조리를 할 수 있도록 편리한 포장 제품으로 많이 출시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처럼 문어를 비롯해 다른 수산 식품들의 수요도 더 늘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현재의 인구 추세를 고려할 때 노인 관련 시장의 급팽창은 수산물 식품산업에도 중요한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미 소량의 간편한 식품화에 성공한 국산 문어는 호주 등으로 수출돼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미처 따르지 못할 정도이다. 국외 시장 개척에 매우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바다 환경이 갈수록 문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수온 현상이 심해지면서 많이 잡히던 문어가 점점 줄고, 대신 열대성 어종이 늘고 있다. 특히 맹독을 가진 파란고리문어마저 제주 근해에 정착하고 있다. 보통 700g에 2만 원 정도이던 문어는 성수기인 추석 땐 3만 5000~4만 원으로 치솟는데, 올해는 ‘바다 폭염’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로 값이 더 오르고 있다.

최근 한반도 주변 수온 상승을 보면 무서울 정도다. 2010년 이후 평균 수온이 15.9도에서 16.7도로 이전 10년보다 0.8도나 올랐는데, 이는 전 지구의 수온 평균 상승보다 2배가량 빠른 것이다. 바로 바다 폭염으로, 지속 기간도 2010년 이후 급격히 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이 바다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는 징표다.

바다 폭염은 어종의 변화, 어획량 감소, 양식 어류의 집단 폐사와 같은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바다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부른다. 국산 문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어획량은 감소하고 가격은 오르면서, 중국, 필리핀, 모리타니아, 인도네시아 등 외국산 문어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실정이다.

바다 환경 변화로 주요 어종의 어획량은 감소하고, 어업 인구마저 줄면서 지금 우리 수산 산업은 여러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수산 식품산업은 냉동 중심의 단순 가공품이 대부분이고, 규모도 소규모 영세 업체가 다수여서 산업 기반이 매우 약하다.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 연구 개발을 위한 환경적 여력도 절대 부족하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 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편이라면 그저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문어도 현재의 김이나 어묵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산 식품으로 도약하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활용 방안 개발에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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