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네 번째 추기경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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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최고위 성직자다. 자국에서는 대교구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로마 교황청 바티칸 시국에서는 국무원장이나 산하 행정기구인 9개 성(省)의 장관직을 맡기도 한다. 추기경은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도 보유하고 있는데, 전 세계 200여 명밖에 없는 까닭에 국가를 초월하는 권위가 있다. 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이 TV 생중계 미사에서 ‘10월 유신’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추기경은 국가원수(교황) 후보자라는 위상에 따라 국제 의전에서도 귀빈급 대우를 받는다.

추기경의 원어인 라틴어 ‘cardinalis’는 ‘cardo’(경첩)에서 왔다. 경첩은 돌쩌귀처럼 문을 여닫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추기경은 교회의 중추가 되는 막중한 직책을 가리킨다. 근대 일본은 이를 ‘추기경(樞機卿)’으로 번역했다. ‘樞機’ 역시 중추가 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주역>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이며, 추기의 발동은 영원의 근원이다’는 구절이 있고, <조선왕조실록>도 중요한 요직을 가리킬 때 ‘추기’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역사적으로 추기경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비롯된 직책이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가 세속 군주들의 거센 입김을 줄이고자 선거권을 추기경들에게만 한정했고, 이후 ‘유폐’를 뜻하는 콘클라베(Conclave) 방식의 선거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교황이 사망하거나 물러나면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비밀투표가 실시된다. 개표 결과는 투표용지를 태운 연기 색깔로 가늠한다. 득표자가 없으면 검은 연기, 새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가 연통에서 흘러나온다.

지난 5월 새롭게 임명된 유흥식 추기경이 어제 교황청에서 공식 서임식을 가졌다. 선종한 김수환·정진석 추기경, 2014년 서임된 현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우리나라 네 번째다. 추기경의 상징인 빨간색 모자 ‘비레타’가 주는 인상이 유난히 강렬했는데, 아시아계 추기경이 10명에서 21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가톨릭의 ‘탈유럽’ 흐름 앞에서 그것은 더욱 또렷이 각인됐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안팎의 권력자와 부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면서 줄곧 약자의 편에 서 왔다.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과하고 그 아픔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 한반도는 세계사적으로 정의와 평화가 절실한 곳이다. 성직자의 참된 길을 걷는 교황과 신임 유 추기경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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