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새는 진짜가 아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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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 사회부 행정팀 차장

전신줄 위에 앉은 새를 유심히 살펴보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진짜 새는 수십 년 전 사라졌다. 미국 정보당국은 진짜 새들을 몰살시켰고, 대신 새 모양의 드론을 만들었다. 카메라를 탑재한 가짜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전신줄 위에 앉은 새는, 드론이 배터리를 충전하는 모습이다. ‘새는 진짜가 아니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은 2017년 미국의 한 대학생 주도로 시작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소셜미디어엔 수백만 명의 팔로어가 모였고, 전국 대학에 수백 개의 공식 지부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가 스물세 살 청년 피터 맥킨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마침내 음모론의 실체와 배후가 밝혀졌다. ‘새는 진짜가 아니다’는 그의 주장이 실은,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조롱하는 사회풍자 운동이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반음모론 운동가인 맥킨도가 미국 남부 아칸소주의 음모론이 일상인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이다. 그는 홈스쿨링을 하며 지구의 나이가 5000년이라고 배웠고, 마을 어른들은 공공연히 오바마 대통령을 적그리스도라고 얘기했다. 대학생이 된 맥킨도는 2017년 극우음모론단체인 ‘큐아넌(QAnon)’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치세력화하는 모습을 보며 ‘새는 진짜가 아니다’ 사회운동을 기획했다. 음모론에 익숙한 지역 출신이면서 외려 큐아넌의 정반대에 섰다는 점에서, 맥킨도의 활동은 더 의미 있다.

최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망자 105명이 추가로 확인돼 공식 사망자만 657명에 달하는 등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강제수용·노역·사망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진실이 국가 차원에서 처음 규명됐다.

인권의 관점에서 부산은 음모론이 횡행한 맥킨도의 고향과 닮았다. 전국 최대 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이 부산에 존재했던 건 6·25전쟁으로 전국에서 피란민이 몰려든 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 고아를 비롯해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수용시설이 하나둘 생겨났다. 형제복지원도 1960년 고아를 보살피던 ‘형제육아원’에서 출발해 규모를 키웠다. 이후 국가와 경찰, 부산시와 박인근 원장 일가는 사회정화를 앞세워 ‘인간 청소’를 자행했다. 여기엔 부산시교육청도 자유롭지 못하다. 1984년 형제복지원 내 개금초등학교 분교가 설립돼 1987년 문을 닫을 때까지 10여 명의 교사가 근무했다. 당시 피해 학생들은 “집에 보내 달라”며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몰래 쪽지도 건넸지만 외면당했다고 증언한다.

불과 35년 전까지 활발하게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최근까지 부산이 인권 불모지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악한 음모론에 선한 음모론으로 맞선 피터 맥킨도는 올 6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 최대 팩트체킹 행사에 참석해, 수백 명의 언론인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칸소주의 맥킨도처럼, 부산도 세계적인 인권운동가가 성장할 토양을 갖췄다. 인권침해 당사자인 부산시와 시교육청이 앞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어떻게 매듭짓느냐에 달렸다. 한 매듭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부산 학생들 인권교육의 ‘산 교재’로 삼는 건 어떨까. 형제복지원은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진짜가 맞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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